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3021
한자 長壽王
영어공식명칭 The King Jangsu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집필자 최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394년연표보기 - 장수왕 출생
활동 시기/일시 408년 4월 - 장수왕, 광개토태왕의 태자로 책봉
활동 시기/일시 412년 - 장수왕 즉위
몰년 시기/일시 491년 12월연표보기 - 장수왕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475년 9월 - 장수왕 백제의 도성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아차성 아래에서 처형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 일대까지 영역을 넓힌 고구려의 왕.

[개설]

장수왕(長壽王)고구려의 제20대 왕으로서 이름은 거련(巨連)[또는 연(璉)]이다. 394년에 출생해 408년 4월에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의 태자로 책봉되었다. 412년에 사망한 광개토태왕을 이어 즉위했으며[『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연표에서는 광개토태왕의 사망과 장수왕의 즉위 시점을 413년이라고 기록했지만,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및 「광개토태왕릉비문(廣開土王陵碑文)」을 근거함], 491년 12월에 사망했다. 장수왕광개토태왕 시기에 마련된 토대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남진 정책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한강 하류 유역에 위치한 백제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가계]

장수왕의 부친은 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태왕이며, 장수왕을 이어 즉위한 문자명왕(文咨明王)[이름은 나운(羅雲) 또는 운(雲) 또는 명리호(明理好)]은 장수왕의 손자이다. 본래 장수왕에게는 조다(助多)라는 아들이 있어 장수왕의 재위 중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장수왕보다 먼저 죽어 조다의 아들이 대손(大孫)으로서 왕위를 이었다.

[활동 사항]

장수왕은 즉위 이후 중국의 분열 상황을 이용한 외교 정책과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으로 팽창하는 남진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장수왕은 가장 강력했던 중국 북조(北朝)의 북위(北魏)에 대항해 남조(南朝)의 왕조들 및 북아시아 지역의 유목 종족인 유연(柔燕)과 연합해 포위망을 형성했고, 북위에 의해 멸망한 북연(北燕) 왕실의 귀속 문제를 두고 북위와 전쟁 직전 상황에 이르렀으면서도 외교는 단절하지 않는 강온 양면 정책을 구사하며 5세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고구려의 독자적 지위를 확립했다.

한편 장수왕은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으로의 확장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부친 광개토태왕 시기에 신라와 맺은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417년 신라의 실성(實聖)과 눌지(訥祗)의 왕위 분쟁에 개입할 만큼 신라의 내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427년에는 도읍을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國內城)에서 지금의 평양 지역으로 옮겨 남쪽으로의 팽창을 분명히 하였다. 한편 472년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협공을 제안한 일을 계기로 475년 9월 장수왕은 직접 고구려군 3만 명을 지휘해 백제를 공격했다. 백제의 도성인 한성(漢城)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사로잡혀 구리 지역에 있는 아차성(阿且城)[지금의 아차산성] 아래에서 처형된 사건이 상징하듯이 고구려는 백제를 남쪽으로 밀어내고 전통적으로 정치·경제·군사·교통의 요충지였던 한강 유역 일대를 차지하게 되었다.

[묘소]

장수왕의 무덤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 지역에 있는 장군총(將軍塚)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며, 평양 지역에 있는 전동명왕릉(傳東明王陵)이 장수왕의 무덤이라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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