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14
한자 貞純王后
영어공식명칭 Jeongsun Wanghu
이칭/별칭 정순(貞純)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45년연표보기 - 정순왕후 출생
혼인 시기/일시 1759년 - 정순왕후 영조와 혼인
활동 시기/일시 1759년 - 정순왕후 왕비로 책봉
활동 시기/일시 1800년 - 정순왕후, 순조를 대신하여 수렴청정
활동 시기/일시 1804년 - 정순왕후 수렴청정을 거둠
몰년 시기/일시 1805년연표보기 - 정순왕후 사망
출생지 정순왕후 생가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39[음암면 유계리 464]
묘소|단소 정순왕후 원릉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8-2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종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훈정동 1]
성격 전통 시대 인물/왕족·호족
성별
본관 경주

[정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의 원릉에 묻힌 조선 후기의 왕비.

[개설]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는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英祖)의 두 번째 왕비이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김한구(金漢耉)와 원주 원씨(原州元氏) 사이의 장녀이다. 정순왕후가 왕비로 책봉된 후 김한구는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원주 원씨는 원풍부부인(原豊府夫人)으로 각각 책봉되었다. 영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는 못하였다.

[활동 사항]

정순왕후는 1745년(영조 21)에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서 태어났다. 영조의 비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사망한 후 1759년에 영조의 계비로 간택되어 가례를 올렸다. 아버지 김한구가 노론에 속해 있었으며, 스스로도 사도세자의 죽음에 일조하는 등 노론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이었다고 평가받는다. 1800년 정조가 사망하고 순조(純祖)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하였다. 이때 정순왕후는 시파 관료들을 대거 숙청하고 정조가 세운 장용영(壯勇營)을 혁파하였으며, 천주교에 대한 금압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정조 대의 정치 문화를 부정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과단성 있는 정치 수행으로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804년 수렴청정을 물리고 순조가 직접 정사를 돌보도록 하였다. 1805년 창덕궁 경복전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정순왕후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원릉(元陵)이다. 원릉영조정순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 형태이다. 정자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영조의 능이며, 오른쪽이 정순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재위 당시 왕릉의 제도를 정비하였고, 이 결과는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원릉의 석물 등은 모두 『국조상례보편』의 체제를 잘 따르고 있다. 정순왕후 이전 영조의 비였던 정성왕후는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경내에 있는 홍릉(弘陵)에 묻혀 있다. 영조는 정성왕후를 위해 홍릉을 조성하면서 자신도 이후 이곳에 쌍릉의 형태로 묻히고자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나, 1776년 영조가 사망하자 손자인 정조가 현재의 원릉 자리에 모셨다. 1805년 정순왕후가 사망한 후에 쌍릉 방식으로 영조의 옆에 묻히게 되어 현재 원릉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1970년 동구릉 전체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정순왕후의 신위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 놓은 종묘에 봉안되어 있다. 종묘에서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전통 제례 의식으로 대제를 봉행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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