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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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錫 |
영어음역 | Yi Seok |
이칭/별칭 | 이이석(李李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윤오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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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 462[현 매원리] |
성별 | 남 |
생년 | 1910년 12월 9일 |
몰년 | 1978년 12월 5일 |
본관 | 광주 |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10년 12월 9일에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화를 추진하다 체포되었다. 1932년에는 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를 조직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총 2회에 걸쳐 6년을 복역하였다.
[활동사항]
1927년 11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公立高等普通學校)에 재학중 결사대에 가입하여 반일 활동을 하였다. 1929년 11월에 서울에서 정종근(鄭種根), 권유근(權遺根) 등과 함께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문(檄文)을 제작·배포하여 학생운동의 전국화를 꾀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2월형을 얻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1932년 2월 칠곡군에서 최소복(崔小福), 정칠성(鄭七星) 등과 함께 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農民組合建設準備協議會)를 만들어 독립과 신사회(新社會) 건설을 위해 활동하였다. 한편으로 왜관에서 이두석(李斗錫), 박형동(朴亨東), 윤억병(尹億炳) 등과 함께 독서회라는 이름으로 비밀결사 성진회(惺進會)를 만들고, 회원 70여 명과 더불어 농촌계몽과 민족 사상을 고취시켰다. 1938년 2월에 체포되어 장기간 미결수로 고초를 겪고 있다가,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