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16
한자 丙子錄
영어공식명칭 Byeongjarok
이칭/별칭 병자 남한 일기,백등록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50]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나만갑
권책 1책
행자 11행[자수부정(字數不定)]
규격 19.4×26.4㎝
권수제 병자록

[정의]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묻힌 조선 후기의 문신 나만갑의 저서.

[개설]

『병자록(丙子錄)』은 조선 후기의 문신 나만갑(羅萬甲)[1592~1642]의 저서로, 병자호란에 대해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병자 남한 일기(丙子南漢日記)』 또는 『백등록(白登錄)』이라고도 한다. 현재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국립 중앙 도서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본이 많다.

[저자]

나만갑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鷗浦)이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인목 왕후 유폐 사건 이후 귀향하였다. 인조반정 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635년 당시 폐단에 대해 상소하였다가 파직당하고 고향에서 은거하고 있었으나,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왕을 모셨다. 이때 나만갑은 공조 참의, 병조 참지 등을 역임하며 군량 조달에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에는 무고로 인하여 귀양살이를 하다가 1639년 풀려나 영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병자록』은 병자호란의 전말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지었다. 발문에 따르면, 천고의 드문 일인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들었고, 직접 본 것을 기록하였으며, 남에게 들은 것은 확실하게 살핀 후에 사실만을 명확하게 기록하였다고 한다.

[형태/서지]

『병자록』은 1책 필사본으로,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의 서지 정보에 따르면 가로 19.4㎝, 세로 26.4㎝이다. 본문 한 면에 11행이 들어가 있으나, 글자 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병자록(丙子錄)'이다.

[구성/내용]

『병자록』은 누르하치의 후금 건국에서부터 시작하여 병자호란의 원인을 탐구하였다. 병자호란 당시의 사실로는 1636년(인조 14) 12월 12일 청이 침입하였다는 장계로부터, 이듬해 2월 8일 소현 세자 등이 볼모로 심양으로 떠난 날까지 총 57일 간 벌어진 일들을 날짜순으로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병자록』은 병자 호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국립 중앙 도서관(http://www.nl.go.kr)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http://lib.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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