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15
한자 明聖王后山陵都監儀軌
영어공식명칭 Myeongseong Wanghu Salleungdogamuigwe』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84년연표보기 -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6월 -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소장처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50]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산릉도감
권책 2책[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기준]
행자 12행 25자[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기준]
규격 34.8×47.2㎝[상책][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기준]|34.9×47.5㎝[하책][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기준]
어미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의정부 분상 건 기준]
권수제 강희이십이년계해십이월 일 산릉도감의궤[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기준]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崇陵)을 조영하는 일을 기록하여 1684년 간행한 의궤.

[개설]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明聖王后山陵都監儀軌)』현종(顯宗)의 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능을 조영하는 일을 기록한 의궤이다. 현종이 1674년 사망하자 숭릉이 조영되었는데, 이후 명성왕후가 1683년에 사망하면서 숭릉에 함께 묻혔다.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어람용 상·하 2책 1건,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분상용 1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분상용 1건이 각각 소장되어 있다. 숭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는 산릉 조영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간행하였다. 산릉은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을 말한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총호사(摠護使)는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이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산릉 조영이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684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는 어람용의 경우 2책 293장으로, 분상용의 경우 1책 246장으로 이루어졌다.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상책은 가로 34.8㎝, 세로 47.2㎝, 하책은 가로 34.9㎝, 세로 47.5㎝의 크기이다. 본문 종이는 초주지(草注紙)[어람용 등 주요 책자나 문헌, 중앙 관아의 업무용으로 사용하였던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5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강희이십이년계해십이월 일 산릉도감의궤(康熙二十二年癸亥十二月 日 山陵都監儀軌)'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분상용의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다.

[구성/내용]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는 좌목(座目), 계사(啓辭), 이문(移文), 감결(甘結), 각소의궤(各所儀軌), 논상(論賞)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목은 도감 관원들의 명단을 적은 것이고, 계사는 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글과 왕의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을 수록한 것이다. 이문과 감결은 관서 간에 오고 간 공문서를 모아서 실은 것이다. 각소의궤는 도감 내에서 부서별로 업무를 처리한 내용에 대해서 기록한 부분으로, 산릉 조영에 소요된 물품 준비 및 제작 과정, 제작에 참여한 공장(工匠)의 명단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논상은 산릉 조영이 끝난 후 관원들에 대해 포상한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는 조선 시대 왕비의 산릉 조영 과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산릉 조영을 위한 조정의 논의 과정, 산릉 조영에 소요되는 비용 및 물품, 물품의 제작 과정 등에 대한 기록이 잘 남아 있어 조선 시대 정치사 및 사회사, 경제사 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명성왕후산릉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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