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092
한자 羅萬甲墓
영어공식명칭 Na-Mangap Myo|Tomb of Na-Mangap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산16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명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642년(인조 20)연표보기 - 경기도 광주 건지산에 분묘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592년(선조 25) - 나만갑 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42년(인조 20) - 나만갑 몰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 9월 16일 - 나만갑 묘 발굴 조사
이장 시기/일시 1681년(숙종 7) - 나만갑 묘 경기도 광주시 건지산에서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으로 이장
개축 시기/일시 2008년 7월 25일 - 나만갑 묘 개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5년 6월 28일 - 나만갑 신도비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26호 지정
현 소재지 나만갑 묘 -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산163지도보기
원소재재 나만갑 묘 - 경기도 광주시 건지산
성격 조선 시대 사대부 묘
양식 사성이 있고 호석으로 둘러싸인 원형분
소유자 안정 나씨 종중
관리자 안정 나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26호 지정

[정의]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나만갑의 묘.

[개설]

나만갑(羅萬甲)[1592~164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毆浦)이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장원 급제 후 홍문관 교리 등을 역임하고 당쟁에 휘말려 이 일을 계기로 일시 파직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공조 참의로 기용되었다가 병조 참의로 자리를 옮겼다. 한편, 병자호란이 일어난 12월 12일부터 다음해 2월 8일까지 56일간의 난중 일기인 『병자록』을 기록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시대의 폐단에 대해 논하다가 무고로 파직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1639년 영주로 돌아가서 1642년(인조 20) 사망하였다.

[위치]

나만갑 묘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산163에 있다.

[변천]

나만갑 묘는 1642년(인조 20)에 경기도 광주시 건지산에 조성되었으나 1681년(숙종 7)에 현 위치인 구리시 사노동 산163으로 이장하였다. 1985년 9월 16일에 발굴 조사가 있었고, 2008년 7월 25일에 개축하였다.

[형태]

나만갑 묘는 가족 중심의 종중 묘역 내에서 동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초계 정씨와 합장묘로 묘역 가장 위에 있다. 봉분을 사성(莎城)[무덤 위에 반달모양으로 둘러막아 쌓은 둑]이 둘러 싸고 있으며, 봉분 둘레는 호석(護石)[무덤의 봉분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하단 가장자리에 돌려 둔 보호석]으로 싸여 있다. 봉분 바로 앞에 월두형(月頭形)의 묘갈(墓碣)[묘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을 둥글게 굴린 작은 비석]이 대좌 위에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용관을 올린 형태의 비석이 하나 더 있다. 비석 뒤로 장대석으로 단을 이루고 있다. 그 단 아래에 상석과 향로석(香爐石)[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이 있고, 양 옆으로 문인석 한쌍이 있으며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있다. 호석·망주석·용관 비석·장명등 등의 석물은 후손이 근래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비석 전면에는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겸영경연사 감춘추관사 가선대부 행형조참의 나공만갑지묘(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嘉善大夫 行刑曹參議 羅公萬甲之墓)'라고 쓰여 있다. 근래에 새로 세운 비석에는 '가선대부행형조참의나공만갑지묘 정경부인 초계정씨 부좌(嘉善大夫行刑措參議羅公萬甲之墓 貞敬夫人 草溪鄭氏 附左)'라고 쓰여 있다.

[현황]

나만갑 묘역 하단에 세워진 나만갑 선생 신도비가 1985년 6월 28일부로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