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E03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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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엄윤 |
선비마을이라 마을에서 주민들끼리 어울려 놀아 본 적이 없다는 아랫마을과 달리, 서치마을의 경우 인동장씨 네가 몇 가구 살기는 하지만 산에 올라가 기우제도 지내고 정월 대보름 달집도 태우는 등 1년 내내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서치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장상문 옹이, 해방되기 전에는 마을에 심한 가뭄이 들면 무제라고 하는 기우제를 지냈는데, 해방이 되고 차차 살기가 좋아지면서 무제도 지내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무제라고 하늘한테 비는 기라. 저 산만데이(뒷골) 꼭대기에 올라가…… 공 들이고 하는 데가 있어, 거 가면 나무가 소나무라도 아무도 손 못 대고 그런 나무가 대엿 나무(대여섯 그루) 섰는데, 아주 산중이라 골짜게, 자리 피고 저 명태나 한 마리 사가지고 가서 술 한 잔 놓고 절할 사람이 절하고, 무제라고 하늘한테 빌고 그라면 어떨 때는 거 날짜를 잘 받아야 돼, 진사일 날짜를 받아야 비가 오거든, 비오는 날이 진사일이라, 그래 가지고 축을 써가지고 빈다. 하는 사람은 일러주고 절하고, 그라마 덜 내려와서 비 올 적도 있고, 가물 적엔 암만해도 안 돼.”
정월 대보름에는 산 위에 올라가 달집태우기를 했는데, 장상문 옹의 말씀에 따르면 달집태우기는 동네 젊은이들만 산에 가서 하는 행사였단다. 동네 젊은이들만 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베어다 달집을 지어 놓고, 달이 뜨면 그 밑에 나무를 끌어 모아 불을 놓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 달불이야!”라고 소리도 지르고 놀기도 하며, 달을 보고 소원성취를 빌기도 했단다.
해방이 되기 전까지 서치마을에도 머슴이 한 대여섯 집에 있었는데, 다달이 머슴이 노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머슴도 한 마을에 머슴이 한 대엿집 그래 살면, 그러면 머슴들 노는 날이 집에 그냥 있는 사람도 머슴캉(머슴이랑) 같이 놀아, 달달이 오는데 정월달은 원래 노는 달이고 2월 무방숫날카는 게 있어, 무방숫날은 2월 초하루가 되고(음력으로) 양력 3월 달 삼월삼짓날, 사월초파일 놀고, 오월단오 놀고, 유월유두, 칠월칠석, 하루씩 놀아, 팔월 한가위, 대한민국 다 노는 날이지, 구월구순절날 놀고, 그러고 나면 그만이지, 그러고 나면 농사는 다 했는 기지, 구월달 되면 추수하거든, 바쁘고 한데 놀 여도 없고 추수를 해야 놀지.”
장상문 옹에 따르면, 당시에는 마을에 아랫사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가진 것이 없어서 남의 집 심부름을 하고 밥을 얻어먹게 되면 아랫사람으로 불리는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반말을 했단다. 그렇게 마을에서는 머슴이나 아랫사람들, 그리고 평민들이 절기마다 함께 어우러져 놀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상문 옹은 또, 일제강점기에 서치마을 저수지, 즉 웃못이 생기기 이전 못 안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고 기억해 냈다.
서치에 사는 전주이씨 안노인이 일찍 남편을 여읜 뒤로 그 나무를 당산나무로 섬기며 공을 들였으나 웃못을 파면서 나무를 들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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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지(웃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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