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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묘군 오장군바위와 오인석강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D020302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3·4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순하

김광순의 『한국구비문학』에 따르면, 웃갓마을에는 오인석강씨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웃갓마을 주민 강재희 옹에게서 오인석강씨라 불리게 된 연유를 들었다.

“왜 오인석이냐면 이 마을에 방구(바위)가 5개 있는데, 방구(바위)를 따가지고 이곳에 사니깐 오인석이라고 지은 거야. 오인석강씨 유래가 요 마을에서 난 거다. 시방(지금) 사는 강씨는 진주강씨라.”

그러니까 강재희 옹의 말에 따르면, 현재 마을에 사는 강씨들은 진주강씨가 맞지만, 예전 바위 5개가 집 안에 있다고 해서 오인석강씨라 불리던 강씨의 유래가 웃갓마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천면의 유래집인 『내 고장을 아십니까?』에 따르면, 옛날 현감을 지낸 강정해(姜貞海)의 아들 효손, 예손, 충손, 신손, 종손 5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하여 일시에 벼슬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때 형제마다 차고 있던 관인(官印)을 잔치마당에 박혀 있던 5개의 바위에 각각 얹어놓고 위부설연(爲父設宴)을 빛냈다고 하여, 그 5개의 바위를 오인석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오래 살았으니깐 오인석을 위해서 우리는 오인석강씨로 하겠다고 해서 파가 나눠진 거라. 여기 사는 사람들을 오인석강씨로 한 거야.”

웃갓마을 진주강씨 박사공파인 강재희 옹에 따르면, 강정해(姜貞海)와 그의 후손들은 원래 진주강씨 박사공파였으나 그 때 파를 오인석강씨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헌상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오인석강씨 후손들은 2009년에도 명절이나 제삿날 지천면 신리로 성묘를 왔다고 한다. 오인석바위는 지도에 신리지석묘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오장군바위’라고도 불린다. 지석묘군은 크기가 가장 큰 2호를 중심으로 1호, 3호, 4호, 5호 지석묘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나, 강재희 옹과 위치를 확인해 본 결과 박복선 씨 집 뒷마당에 군집했던 바위 중 한 개만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머지 4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 바위 아니가. 이게 제일 큰 바위고, 이 집에 바위가 하나 있었는 거라. 없어졌어. 나무 있는 그즈음에 있었을 거라. 저기 빨래 너는 데에 하나 있었고 그 너머에 하나 있었고. 하나는 이제 여기. 담 사이에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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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석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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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선 씨 집 뒷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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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선 씨 집 뒷마당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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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선 씨 집 대문

[정보제공]

  • •  강재희(남, 1920년대 생, 웃갓마을 거주, 진주강씨박사공파문중 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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