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슈퍼마켓의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C030201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남창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엄윤

남창마을 입구에는 슈퍼가 하나 있다.

간판 하나 없이 그저 유리로 된 문에 ‘남원슈퍼’라고 쓰여 있는 이 소박한 슈퍼는 그래도 맞은편에 있는 구멍가게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팔고 있다. 시골 슈퍼는 으레 버스정류소 역할도 하는지라, 동명면남창마을을 오가는 버스 노선과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들어갔더니, “내 여기서 담배장사 40년 해도 양담배 한 번 안 팔아 봤다. 우린 순 신토불이라, 외제 담배 사러 오면 우리 담배 좋은데 말라꼬(뭐하려고) 외제 담배 피우노.” 하신다고 당당하게 묻지도 않은 말씀을 던지신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전기 들어온 날

이 건물이 생긴 것은 1958년으로, 그러니까 옛 남창마을에 수해가 나서 이곳에 마을을 일구고 내려와 몇 해 지나지 않아서이다.

당시 이곳에는 박씨 아저씨가 살았다고 한다. 손재주가 많았던 박씨 아저씨는 이곳에서 라디오방송국도 하고 이발소, 우체통, 슈퍼 등 등 다양한 일을 벌였다고 한다.

“방송이 라디오, 지금 말하면 유선방송 택이지. 요즘은 유선방송이 텔레비로 공중으로 띄우지만 그때는 300호면 300호, 집집마다 선을 연결해 가지고, 남원동, 득명동, 동명 일부까지 했었는데 300호 정도 했지.” 1972년에 이 건물을 사가지고 이사 왔다는 송기태 씨가 하는 말이다.

이 슈퍼에서 전파되는 방송을 듣기 위해서는 집집마다 보리 한 말, 벼 한 말 등 돈을 냈어야 했는데, MBC와 KBS 등 세 채널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주로 낮에만 방송을 했으며, 각 가정에는 약 30㎝ 크기에 두께 20㎝ 정도 되는 스피커가 달려 있어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구가 청취할 수 있었다.

“방송사고? 그런 건 모르겠어요. 뭐 우예 방향 잘못 틀으면 빽 소리가 나요. 외부의 목소리가 귀했던 때라…… 요새 같으면 방송사고지………(중략) 6·25노래 그런 거 많이 나왔어요.”

마을에 방송을 처음으로 들여 올 만큼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박씨 아저씨는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세 명 정도 있었고, 동명동부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면 마을 대표로 달리기를 했다고 한다. 박씨 아저씨가 슈퍼마켓을 하던 시절 아이들은 추억의 먹거리인 막대사탕이나 꽈배기, 밤과자 등을 사먹었고 어른들은 20원짜리 풍년초를 사다 곰방대에 넣어 피우며 이홉드리 안동소주를 한 잔씩 사먹곤 했단다.

또한 이곳에는 우체통도 있었으며, 우표도 함께 팔았다고 한다. 외부로 전달해야 할 편지를 우체통에 집어넣으면 우체부가 와서 한꺼번에 찾아가곤 했는데,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급하게 전보를 쳐야 할 때는 동명우체국까지 갔지만 우체통의 75%는 편지로 채워졌다고 한다. 요즘은 도시고 농촌이고 간에 전화며 인터넷 등의 발달로 빨간 우체통을 보는 것도 힘들다. 얼마 전까지도 남창마을 입구에는 빨간 우체통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그 속에 담겼을 수많은 사연들이 전해졌던 그곳들은 어디였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빨간 우체통 역시 이제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기억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되었나 보다.

[정보제공]

  • •  사공택상(남, 1955년생, 남창마을 거주, 남창마을 이장)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