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C010202 |
---|---|
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남창마을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최엄윤 |
현재의 남원2리, 곧 남창마을은 1954년 집중 폭우로 원래의 남창마을이 유실되기 전까지는 남창마을의 논밭이 있던 자리이다.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농사를 이까지(여기까지) 지으러 와야 했지. 등허리 지게에 담아가 짊어지고 저 올라가면 오전에 한 짐, 오후에 한 짐, 두 짐밖에 못 져.” 하신다.
가산산성 안의 마을에서 논과 밭이 있는 현 남창마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했을 남창마을 사람들의 부지런한 하루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우렁이농법이 있기도 훨씬 전 소를 몰아 밭을 갈고 품앗이로 모를 심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가위를 앞두고 마을 입구 육각정 평상에는 남창마을에서 가장 어리다는 유치원생부터 70대 후반의 마을 최고 어르신들까지 온 마을 사람이 절정에 오른 가을 햇살을 만끽하기 위하여 모여들고 있었다. 4~5명의 남자 어른들을 중심으로 소박한 술상을 받아 놓고 옛 이야기를 청해 보니 여기저기 소란스런 말들이 오고간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평일의 동네 평상 모습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평상에서 식사하는 동네 어른들
아무리 농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옛 어른들의 지혜를 따라갈 수 있을까? 이전보다 농사는 기계화되고 많이 편해지긴 했어도 농약이 생기면 병이 생기고, 신형 농기구를 만들어도 옛날 것의 형태를 빌려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소 몰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쌀농사 짓는 데 소로 가지고 뒤에 쟁기 메고, 우리는 우측으로 가자 카면은(그러면) ‘일러로, 일러로’, 좌로 가자 카면은(그러면) ‘어리어리’ 이카지, 어디로 카면은(하면은) 돌리고…….”
이렇게 소가 쟁기를 끌 때 소 몰던 소리는 소가 반살림이라고 하던 시절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소리 풍경이었다.
“가자 카는(하는) 거는 이랴, 멈추는 거는 워~워~, 안 그라믄 일 몬하지, 소가 사람보다 영리하다. 안 그라면 부리묵도 몬하지…… (중략) ……소 길들일라 카면(하면) 여자가 있어야 해요. 뒤에 남자가 꼬챙이 지고 따라가고 앞에 여자가 끌고 가고, 여자는 앞에 그냥 끌고 뒤에서 어디 일러로 카면 몇 번 안하면 질이 잡혀요. 줄로 코를 꿰고 땡기면 아프니께 따라가 온단 말이야, 뒤에 꼬챙이 들고 따라가며 일러로 일러로 카면, 또 끄는 사람이 잘못 끌면 잘못 가, 그럼 뒤에 따라가는 성질 급한 남자는 에이끼! 소새끼보다 못하다…… 했지. 허허허.”
집집마다 소로 농사를 짓던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육각정은 웃음소리로 들썩이고, 어느새 마을에서 세 번째로 연세가 많으신 사공태 옹이 논에서 피(잡초)를 뽑을 때 부르던 노래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부르며 손짓으로 풀 뽑는 흉내까지 내신다.
“이래 가지고 논바닥에 열 사람이면 열 사람 주욱 서가, 골비라 카는게 있어요. 손톱이 하도 닳아가, 만들어 가지고 찌고(끼고)…… (중략) ……벼가 이래 꾹꾹 숨기가 있어요. 나락 안 다칠라카면 빈터로 가가 위이어엉 사하한 사하아아, 사하아아 칼 때면 뚤뚤 말아가 땅에 뭍는기라, 뭍어야 안 자라지, 아니면 또 자란다 카니께…… (중략) ……죽 내려가며 계속 부르면서 가는 기지.”
마을 사람들이 어르신의 노래 솜씨에 감탄을 자아내며, 기억력도 참 좋으시다고 칭찬을 늘어놓자 이번에는 “요게 꼽고 저게 꼽고 서마지기 논빼미가 반달만치 남았구나…….” 하는 모내기 할 때 부르던 노래를 들려주신다.
서 마지기면 1,983.48㎡의 논인데 반달만큼 남았다는 거는 이제 다 심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농사가 얼마나 지겹고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라는 상상도 할 수 있고, 또한 서 마지기밖에 안 되는 작은 논을 강조하는 노래 같기도 하다.
“박자 맞춰가 숨구면(심으면) 더디가(느려서) 안 되고 손은 빨리 움직여야지, 언제 거 서마지기 다 숨구노, 허허허, 박자하고 손하고 틀리.” 진양조처럼 느린 모내기 소리에 맞춰 모심는 동작까지 흉내 내시며 말씀을 덧붙이시니 옆에 계신 어르신도 거드신다. “그 뒤에는 해가지고 날 저문 날에 주인 양반은 어디갔노…… 카고.”
그렇게 한 자락 거드시니 이번에는 다시 “삼대독자 외동아들 병들까봐 수심이요” 그러면서 또 한 자락이 되돌아온다. 모내기할 때 노래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날 기분에 따라, 그리고 남자, 여자 모심는 사람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이렇게 노동요들은 힘든 노동의 시간을 덜 지루하게 하기 위한 위로가 되어 주었지만, 들녘에서 이런 노동요들이 사라진 지도 어언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