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B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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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하 |
2009년 현재 68세인 조남희 씨의 고향은 다부동이다. 다부동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무 살 되던 해 칠곡군 동천[현 대구광역시 동천동]으로 시집을 갔다. 그리고 1970년 온 가족이 함께 다시 고향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그녀는 그때 담뱃가게를 인수하여 운영해 오다 2008년 4월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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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조남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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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희 씨가 운영하던 담뱃가게
시집을 가 동천동에서 살았던 10여 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다부동에서 살아온 조남희 씨에게 다부동은 특별하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그녀에게 부잣집 박씨네 무남독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박씨네 할머니 살았을 적에는 교회 뒤 길로 아름드리 밤나무가 있었다고. 그래가 우리가 밤을 주으러 가면은 꼬꾸라진 할매가 마 얼매나(얼마나) 호랭인둥…… 그 밤을 하나도 못 주웠다 카이께로. 그러이 손녀딸이 내하고 친구여도 그 집에 잘 가지도 못하지만도, 저거 사랑방에 가면은 옛날에 꿀 있제, 그것도 삐져가 묵고. 뒤에 장독간에 가면 뭐뭐 있는동. 그래도 우리는 감히 못 댕기지. 그만큼 잘살았다 카니깐…….”
조남희 씨는 호랑이 할머니 때문에 비록 박씨네 밤은 따먹을 수 없었지만, 친했던 박씨네 손녀딸과 함께 그 집에서 몰래 먹은 꿀이 어찌나 달았던지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조남희 씨는 아버지를 따라 장에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녀가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또래들과 이웃집 사랑방에 모여 자주 놀곤 했는데, 부모님의 허락을 반드시 맡아야만 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명(命)이 떨어지면 저녁을 먹고 이웃집 사랑방에 모여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때 돌아올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가 그녀를 꼭 데리러 왔었다고. 집으로 돌아가 사립짝으로 만든 사립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떨렸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콩닥거린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옛날 어른들 젊을 적에는 면사무소도 있고 파출소도 있고 해서 직원들 부인들하고 설 되면 윷놀이 참 잘 놀았어요. 우리들은…… 기껏해야 국수 삶아먹고 콩나물 밥해 먹고. 그래 우리들은 따라다니면서 구경하고 그랬는데. 어른들이 연세가 높으니깐 한 사람 한 사람 다 가시고…….” 어느덧 회상에 잠겨 있는 조남희 씨에게 어릴 적 다부동은 그렇게 입가에 웃음만 짓게 만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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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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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지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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