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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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喜光 |
이칭/별칭 | 박상만(朴相萬, 朴尙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정병호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2월 15일 - 박희광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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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6년 - 박희광, 중국 봉천성[랴오닝 성] 남성자 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박희광, 통의부 입대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6월 9일 - 박희광, 만주 보인회 습격하여 허일 살해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6월 1일 - 박희광,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친일파 정갑주 부자 살해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6월 7일 - 박희광, 친일파 최정규 집을 습격하여 그의 장모와 부하 사살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7월 22일 - 박희광, 봉천 금정관에서 군자금을 빼앗아 달아나다 중국 경찰에 붙잡혀 일본 경찰로 넘겨짐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 박희광 출감 |
활동 시기/일시 | 1949년 - 박희광,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으로 이주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3월 1일 - 박희광 건국 훈장 독립장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70년 1월 22일 - 박희광 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립 공원 입구에 박희광 동상 건립 |
출생지 | 박희광 출생지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171 |
거주|이주지 | 박희광 이주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활동지 | 박희광 활동지 - 중국 랴오닝 성 |
묘소 | 박희광 묘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사당 2동 산41-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하여 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에서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밀양. 경주 부윤을 지낸 박수홍(朴守弘)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박윤하(朴胤夏), 부인은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박상만(朴相萬)[혹은 朴尙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박희광(朴喜光)은 1901년 2월 15일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중국 둥베이 지방]로 이주하였고, 1916년 봉천성(奉天省)[현 랴오닝 성] 남성자 학교(南省子學校)를 졸업하였다. 1919년 통의부에 입대하여 제5 중대에서 6개월간 군사 훈련을 받고 만철 연선(滿鐵沿線)과 한만[韓滿) 국경 지대에서 관동군 진로를 봉쇄하기 위한 작전에 참여하였다. 1924년 통의부의 명령에 따라 김광추(金光秋), 김병현(金炳賢)과 함께 전문 특공 대원으로 친일파 숙청 작업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6월 1일 여순(旅順)[뤼순]의 조선인회 서기인 친일파 정갑주 부자(父子)를 살해하였고, 6월 7일에는 만주 보민단을 조직하여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친일파 최정규의 집을 습격하여 그의 장모와 부하를 사살하였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수양딸 배정자(裵貞子)와 일진회 회장 이용구(李容九)의 암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해 7월 22일에는 봉천[현 선양]의 일본 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했으나 불발되어 실패하였다. 같은 날 봉천 금정관(金井館)에서 군자금을 빼앗아 달아나다 중국 경찰에 붙잡혀 일본 경찰로 넘겨졌다. 관동 지방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여순 고등 법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여순 감옥에서 20년을 복역하다 감형되어 1943년 출감하였다. 1944년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하였고 1949년 처가인 칠곡군 왜관읍으로 이주하였다. 천주교에 귀의하여 왜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970년 1월 22일 서울 원호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국립 서울 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관동성 지방 법원 재판 기록이 게재된 1924년 9월 1일자 『동아 일보』 기사가 발견되어 박희광의 행적이 입증됨으로써 1968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84년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립 공원 입구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기념 사업회에서 박희광의 생가 복원과 추모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