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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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佰 |
영어음역 | Yi Sangbae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윤오 |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86년 8월 15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대의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 때 대구 거사가 준비 중인 3월 7일에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등사해 가지고 인동교회 목사인 이상백(李相佰)을 찾아와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진평동의 기독교 청년 신도들이 독립선언서를 베끼고 태극기를 만들어 거사 날인 3월 12일에 마을 곳곳에 선언서를 붙이고. 밤이 되면 모두 참여하도록 알렸다. 이날 밤 8시경부터 뒷산 밑에 3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이자 이상백은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곧 독립이 될 것이며, 이를 앞당기도록 만세 운동을 해야 한다’며 역설하고 밤이 깊도록 만세를 외쳤다. 경찰이 출동해 이상백과 주동자 일부가 체포되고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다. 남은 주동자들은 다시 시위를 추진하여, 3월 14일 오후 9시에 200여 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공소(控訴)하여,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로 감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