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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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市近郊漆谷特作農業- |
영어의미역 | Yesterday and Today of City Suburb Chilgok Special Production Agricultur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상철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도시 근교농업의 형태를 띠고 있는 특작(特作) 농업.
[개설]
전형적인 도시 근교농업의 형태를 띠고 있는 칠곡 농업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면 백화점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종합 세트다. 왜 이런 평을 받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없는 작물이 없는 농업이기 때문이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사실 칠곡의 농업은 도시 근교의 장점을 살린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량 소비처인 인근 대도시의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많은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재배 작목의 변화가 다른 지역보다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특성을 살리다보니 지역을 대표하는 뚜렷한 특산 작목은 약간 부족한 점이 있다. 이러한 지역 특성으로 인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들라면 어느 작목을 내세울까 망설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지역처럼 지역의 자연적 특성인 기후와 토질, 강수량 등 자연 여건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특산 단지가 조성된 지역은 비교적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칠곡의 농업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는 미작보다는 도시 근교의 특용작물 위주로 살펴보기로 한다.
[칠곡의 농업]
낙동강이 지역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대구와 인접한 칠곡군의 농업은 그동안 지역과 주변 여건에 따라 무수한 변화의 길을 걸어 왔다. 변화의 폭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치는 농가 수와 경지면적의 변화를 들 수 있다. 1992년 칠곡군의 경지면적은 8,508㏊였다. 그로부터 대략 20년 후인 2011년의 경지면적은 7,864㏊로 8%가 감소했다. 1992년에 7,781호이던 농가 수는 2011년에 5,423호로 30%가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경지면적과 농가 수가 감소했다. 지역의 도시화와 이농 등이 주된 요인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농가별 경작 규모는 증가하고 농업 종사 인력도 노령화, 부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된 경향을 보였다. 이와 동시에 쌀농사 비중이 크게 줄어들고 특용작물 위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사과’의 후퇴와 ‘단감’의 진격]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을 들라면 대부분 사과(沙果)를 든다. 사과가 국민 과일인 셈이다. 국민 과일 대접을 받는 사과가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은 언제부터일까. 결코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사과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인조 때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麟平大君)이 청나라에 사은사로 갔다가 사과나무를 들여 온 것으로 『남강만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재배가 이루어진 것은 1882년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도입된 이후부터이다. 들어온 것이 오늘날의 사과와 같은 것이다. 칠곡에 사과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도 이보다 조금 늦은 1900년도 전후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주로 재배되던 품종은 홍옥과 국광, 인도 등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일본인들에 의하여 대규모로 재배가 이루어졌다. 재배 지역은 낙동강을 따라 강변의 모래 토질로 이루어진 왜관읍의 금남리를 비롯해 낙산리, 왜관리 일원과 석적읍 남율리, 약목면 덕산리에서 많은 사과가 재배되었다. 모래땅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사과(沙果)란 명칭을 얻은 것과 비슷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당시 사과의 최대 집산지였던 대구 지역이 금호강변을 중심으로 재배되었듯이 칠곡 지역도 낙동강을 중심으로 주로 재배되었다. 사과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대구사과’에는 넓게 보면 칠곡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도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칠곡의 사과 재배 전성기는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주로 일본인에 의해 재배되던 것을 이어받아 주로 재배되다가 1960~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칠곡의 사과는 서서히 북상하기 시작해 지금은 군위와 의성을 거쳐 청송과 영양 지역까지 올라갔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칠곡의 사과는 급격히 즐어들었고 지금은 비교적 지대가 높은 북삼읍 어로리와 보손리, 가산면 송학리, 석우리 일원 등지에서 소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재배 면적도 75.8㏊ 정도에 불과하다. 기후 온난화 영향으로 당도가 떨어지고 착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상품성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과가 재배되던 과수원은 도시 인근 지역의 특성에 따라 대부분 채소 재배로 전환되었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과가 후퇴함에 따라 단감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칠곡 지역에 단감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겨울철 기온이 따뜻한 경남의 진영과 김해 등에서 주로 재배되던 단감이 기후 온난화 영향에 따라 칠곡까지 북상한 것이다. 단감이 처음 들어온 곳은 금오산 기슭인 북삼읍 숭오리 일원이었다. 처음 칠곡에 단감이 들어올 때만 해도 재배지로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설령 재배가 가능하다고 할지라고 겨울철 기온이 낮아 상품성이 떨어짐으로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단감이 도입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주산단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20년의 짧은 역사 속에 재배 면적이 대략 15㏊ 정도로 크게 늘었다. 재배 지역도 북삼읍 숭오리 일원에서 군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도입 당시의 품질 저하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우수한 품질로 서울 등 대도시 공판장에서 진영단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칠곡의 단감이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경남 지역보다 주야간의 기온차가 커서 과당도가 높아 소비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과일의 성숙과 착색 시기가 빨라 경쟁력이 높은 것이다. 북부 지역의 가을 단풍이 남부 지방보다 일찍 물드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칠곡의 단감이 익는 시기가 경남 지역의 단감이 익는 시기보다 빠른 것이다. 이것이 칠곡 단감의 경쟁력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에 따라 칠곡에서의 단감 재배는 기후 온난화의 진행과 함께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단감 재배지역은 이미 상주 지역까지 올라간 상태다. 앞으로도 사과를 밀어내고 계속 북상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농민들에게 있어서 기후온난화의 후유증으로 보아야 할지, 지구온난화의 혜택으로 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다.
[품질로 승부하는 칠곡 벌꿀참외]
요즘 관광지 주변이나 도로변 공한지에서 1톤 차량을 이용해서 과일을 파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들이 차량에 부착하는 광고 문구를 보면 과일마다 어느 지역의 과일이 가장 명성을 얻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곶감은 어디를 가도 ‘상주곶감’이고 옥수수는 무조건 ‘강원도찰옥수수’다. 게는 무조건 ‘영덕대게’라면서 판다. 서울 한복판이나 강원도 산골이나, 제주도나 모두 같다. 모두가 상주곶감이고 강원도찰옥수수라면서 판매한다. 참외도 마찬가지다. 참외하면 무조건 성주참외라고 하면서 판매한다. 이미 곶감이나, 옥수수, 참외 등 많은 농산물이 특정 지역의 특산물로 깊이 인식된 탓이다. 그러나 이것은 재배 기술이 널리 보급되지 않고 작물 재배가 주변 환경에 크게 좌우될 때의 일이다. 현재는 재배 기술의 발달과 인위적 환경 조성으로 어느 작물이나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재배되지는 않는다. 참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참외 주산지로 알려진 성주군과 인접한 칠곡군 지역에도 많은 참외 재배가 이루어지고 고품질로 소비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있으나 성주참외의 명성에 가려져 손해를 보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에는 고품질 참외 생산으로 칠곡참외의 명성을 다져가고 있다.
품질로 승부하는 칠곡참외의 특징을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칠곡에서 참외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다. 처음 칠곡에 참외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성주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 처음 도입 당시엔 노지재배였다. 고랑에 짚을 깔고 참외를 심어 재배하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참외 재배는 대나무 골주를 이용한 터널 재배 방식을 거쳐 대나무 하우스 재배, 철재 하우스 재배로 변화되면서 재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는 전국 최고의 참외 주산지라고하는 성주의 기술을 능가하고 있다. 칠곡의 재배 기술이 성주 지역으로 역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표적인 기술이 벌꿀참외 재배 기술이다. 벌꿀참외 수정법은 1996년 칠곡 양봉연구회의 박명우 회장이 개발한 자연형 수정방식이다. 참외 하우스에 꿀벌을 투입해 벌들이 참외를 수정시키는 방식인 것이다. 획기적인 신기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농가에서 약품을 이용해 수정하는 방식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꿀벌을 이용해 자연형으로 수정함으로써 참외의 당도가 높고 일손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지역의 모든 농가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칠곡의 꿀벌참외가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자 꿀벌수정 방식은 성주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되어 대부분의 농가들이 꿀벌수정 방식을 택하고 있다. 칠곡의 신기술이 참외 주산지인 성주로 역수출된 사례다. 이것은 칠곡의 참외 재배 기술의 발전 척도로 이야기되고 있다. 접붙이는 방식도 앞서가고 있다. 성주 지역은 주로 신토좌대목에 호접으로 접목을 하지만 칠곡에서는 꽃호박을 대목으로 하여 편엽합접 방식을 택하고 있어 품질을 높이고 질병의 발생률을 크게 낮추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참외의 출하 시기는 아직 성주 보다 늦지만 품질의 우수성이 입증되어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참외 재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농업 전문가들은 농산물 수입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참외만큼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이유로 참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을 들고 있다. 참외 수확 시기인 4월에서 6월 사이에 참외와 경쟁할 만한 과일이 없고 특유의 향과 아삭아삭한 맛이 우리의 입맛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멜론은 참외와 비교할 때 당도가 높지만 향이 적고 물컹한 맛이 있어 우리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이다. 멜론의 당도가 17도 정도인 반면에 칠곡에서 많이 재배되는 금싸라기 참외의 경우 대략 15도의 당도를 나타내고, 참외가 향과 아삭한 맛 때문에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칠곡의 참외 재배 면적은 대략 500㏊ 정도 된다.
[오이 길이만큼 긴 역사를 가진 칠곡의 오이농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과채류 중에서 가장 긴 역사를 들라면 단연 오이를 들것이다. 오이의 길이만큼이나 길다고들 한다. 우리나라에 오이가 들어온 것은 대략 1천 5백년 정도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인도 북부 지역에서 유입됐다고 한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처럼 오이도 인도로 유학을 갔던 승려들을 따라 들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오로지 상상일 뿐이다. 오이는 유기질이 많은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낙동강변에서 일찍부터 재배되었다. 칠곡군의 중심을 관통하는 낙동강 주변이 오이의 재배 조건에 알맞아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다. 칠곡 지역의 오이 재배 역사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왜관읍 금남리 일원에서 많이 재배 되었다. 금남 지역의 오이가 하우스 재배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동명면 가천리 지역은 노지재배가 주종을 이룬다. 면적이나 재배 기술을 볼 때 금남 지역이 한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금남 지역 오이는 낙동강의 비옥한 토질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 명성이 높다. 현재 칠곡군의 오이 재배 면적은 대략 39.8㏊ 정도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오이 역시 노지재배를 시작으로 하우스 재배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현재는 연동 하우스와 단동 2중 하우스가 주를 이룬다. 단동 하우스는 한동의 면적이 대략 6백여㎡ 인 반면에 연동 하우스의 경우 3배 정도인 2천여㎡로 면적이 넓어 노동력이 적게 들고 온도 관리가 용이해 대부분 연동 하우스를 채택하고 있다. 재배 작형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오이 2기작이 많았으나 이제는 오이와 토마토를 번갈아 심는 형태의 작형이 많다. 오이 연작 재배에 따른 각종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칠곡에서 생산되는 금남오이가 오랜 재배 기술을 바탕으로 친환경적이고 싱싱함이 인기를 끌면서 지역의 명품 농산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칠곡의 오이 재배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양봉특구로 새로운 활력을 찾는다]
이제 ‘꿀’하면 ‘칠곡’이라고 하는 등식이 성립된 지는 오래다. 칠곡의 꿀이 진한 향과 달콤한 맛으로 완전 무장했기 때문이다. 전국 최대의 아카시아 군락지인 신동재의 아카시아 향이 고스란히 꿀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봉인들이 성지처럼 여기는 신동재 일원에는 330만㎡ 의 아카시아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전문적으로 양봉을 하는 양봉인들은 봄이면 대부분 신동재를 거쳐 간다. 5㎞ 구간의 신동재 양편에 펼쳐진 아카시아 꽃에서 품질 좋은 꿀이 흐르기 때문이다. 양봉인들은 한해 꿀농사는 신동재가 좌우한다고들 말한다. 신동재에서의 아카시아 꿀 채취량에 따라 꿀농사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칠곡꿀이 오늘처럼 명성을 얻은 것은 이러한 지리적 여건을 바탕으로 한 아카시아 벌꿀축제가 한몫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아카시아 벌꿀축제는 매년 5월 초순 아카시아꽃 개화시기에 맞추어 열리고 있다. 매년 축제에 15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모여든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5월이 되면 신동재는 사람과 벌과 꽃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다. 현재 칠곡군에서 양봉을 하는 농가는 대략 389백여 농가다. 연간 708톤의 꿀을 생산한다. 생산량으로 볼 때 전국 1위로 전국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 대략 248억 원에 달하는 생산액이다. 이들 농가들은 칠곡양봉연구회를 구성해 양봉에 대한 기술과 정보를 교류하면서 양봉 기술과 함께 칠곡꿀의 품질을 높이는 데 힘을 모은다. 칠곡에서 생산되는 꿀은 품질의 고급화와 함께 브랜드화에 성공해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꿀이네와 안상규벌꿀이다. 꿀이네는 칠곡군에서 양봉을 하는 양봉인들이 힘을 모아 만든 양봉영농조합법인으로 개별적으로 생산한 꿀을 엄선해 단일 브랜드로 판매한다. 안상규벌꿀은 벌수염 붙이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안상규 씨가 독자적으로 생산한 브랜드다. 칠곡의 꿀이 명성을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카시아를 비롯한 풍부한 밀원에서 물어온 꿀을 벌들이 날개 바람짓을 통하여 적정한 수분 농도를 맞추고 벌집을 완전 밀봉 후에 채취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카시아 벌꿀임을 증명하는 탄소동위원소 -23과 무항생제 검사와 수분 검사등 8종의 검사를 거친다. 이런 검사는 공인 기관인 한국양봉협회가 보유한 인터그라시엔과 엘시 메스메스와 같은 첨단 검사기계를 사용한다. 특히 탄소동위원소 검사를 거칠 경우 설탕과 과당의 포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칠곡의 명성을 얻고 있는 칠곡의 양봉산업이 언제까지나 지속될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칠곡에서 가장 많이 채취하는 아카시아 꿀의 앞날이 한없이 밝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동재를 비롯한 군내 전역에 자생하는 아카시아의 수령(壽齡)이 늘어나면서 점차 수세(樹勢)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들어 아카시아 황화현상이 일어나고 고사하는 나무들이 늘어나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칠곡군과 양봉인들의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자연의 현상이지만 최대한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수령이 많은 아카시아의 고사에 대비해 새롭게 아카시아 묘목을 식재해 후계목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아카시아에만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밀원을 다양화하고 특성화 하는 것이다. 아카시아를 대체할 새로운 밀원수(蜜源樹) 확보에도 열성적이다. 대체 밀원수로 선택된 것이 헛개나무와 엄나무, 옻나무 등 약용성 밀원수다. 칠곡의 양봉인들은 지금 군 전역에 약용성 밀원수 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양봉장 주변은 물론 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지와 마을 주변 야산에 주로 심는다. 특히 2007년부터는 겨울철 산불 피해지역에 새롭게 식수를 할 때는 반드시 헛개나무나 엄나무 등 약용성 밀원수를 심는다. 이들 약용성 밀원수는 꿀의 품질이 우수하고 약효가 뛰어나 고가로 판매되어 농가소득 증대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개화 시기가 아카시아 꽃이 5월 초순인 반면에 이들 밀원수들은 6월에서 7월로 아카시아와 개화 시기가 중복되지 않아 연중 꿀을 채취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칠곡군이 양봉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채택한 방안중의 하나는 양봉 특구 조성이다. 양봉특구를 조성해 양봉 주산지의 명성을 더욱 굳건히 지키고 양봉 산물과 가공품을 생산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목적에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칠곡군은 2008년에 지식경제부로부터 양봉 특구로 지정받았다. 전국에서 양봉 특구로 지정받은 곳은 칠곡이 유일하다. 칠곡군은 양봉 특구 지정을 계기로 군 전역을 양봉단지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군 전역에 헛개나무와 엄나무 등 기능성, 약용 수종의 식재를 추진하고 기산면에는 양봉 체험농원을 조성한다. 지천면에는 양봉자연 체험공원 조성과 함께 종합 양봉생산 가공센터, 양봉교육장과 판매시설, 헛개나무 분쇄시설 설치 등 다양한 양봉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꿀의 생산에서 가공, 판매, 체험까지 두루 가진 종합 양봉센터로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봉 특구는 칠곡꿀의 명성을 더욱 높이고 새로운 체험 관광지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봉 특구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되면 인터넷 세대, 신세대들에게 꿀의 고장이라는 달콤한 용어를 선점하게 되어 관광객의 증가도 기대된다. 꿀하면 칠곡을 떠올리고 칠곡하면 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꿀맛을 보려거든 칠곡으로 가라는 말이 생길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흙 없이 짓는 농사, 수경재배]
“우린 흙 없이 물에서 농사를 짓는다. 거짓말 하지 마라. 뻥을 처도 유분수지 어떻게 흙 없이 농사를 지어···” 1백 년 전 농부들에게 이러 이야기를 하면 단번에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백년이 아니라 30년 전만 해도 흙이 아니라 물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대부분의 농민들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농촌진흥청 같은 연구기관이나 대학 연구실에서는 오래 전부터 연구 목적으로 수경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꿈같이 들릴지 모르는 농법이지만 수경 재배 농법은 칠곡에도 전파되기 시작 했다. 칠곡군에서 최초로 수경 재배를 도입한 농가는 지천면 영오리의 김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가 지금부터 20년 전인 1989년이다. 김씨가 처음 수경 재배한 농작물은 상추와 쑥갓 등의 엽채류였다. 당시 수경재배의 도입은 과히 칠곡 농업에 있어서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농민들이 신기술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였고 한편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주변의 만류도 많았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주변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시작된 수경 재배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주변 농가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설의 설치와 투자 자본, 재배기술 등으로 보편화 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칠곡에 있어서 수경 재배 기술이 보급되어 본격적으로 재배된 곳은 봉계농산의 장미 재배를 들 수 있다. 왜관읍 봉계리에 지역 농민들이 영농법인을 설립해 대규모 유리 온실을 건축해 꽃을 재배한 것이다. 봉계농산의 수경 재배는 장미였다. 이곳에서 수경 재배로 키운 장미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나 이후 경기 불황과 자금 사정 등으로 현재는 재배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장미 대신에 국화가 수경 재배가 아닌 토양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밖에도 지천면 달서리 일원에서 토마토 재배가 수경 재배로 많이 이루어지고 북삼읍의 가지 재배 농민들이 수경 재배를 통하여 가지를 생산했다.
수경 재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흙을 사용하지 않고 물과 수용성 영양분으로 만든 배양액 속에서 식물을 키우는 방법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물재배 또는 물가꾸기라고 부른다. 수경 재배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에서 재배하는 특성에 따라 친환경 재배에 많이 이용된다. 또한 실내나 비닐하우스 속에서 토양과 접촉하지 않고 재배되기 때문에 병충해의 발생이 적어 농약을 살포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고 작물의 특성에 맞는 배양액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빠르고 생산량이 많다. 우리나라에 수경 재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54년으로 농촌진흥청에 재배 시설을 설치하고 토마토와 오이, 수박, 멜론 등의 과채류와 상추, 배추, 셀러리, 시금치 등의 채소류를 재배했다. 농가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80년 초부터다.
[우린 꽃 향기 속에 산다]
도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농업 중의 하나는 꽃 재배다. 재배 과정과 소득보다는 아름다운 꽃을 키운다는 것만 생각하는 때문일 것이다. 농사일의 힘든 과정과 농촌의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단계의 꽃만 생각하는 일종의 환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훼농업도 엄연한 노동이요 힘든 직업이다. 어쩌면 목장을 생각할 때 젖소를 키우는 노동보다는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하얀 집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모든 농사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꽃을 키우고 꽃 속에서 생활한다면 힘든 노동을 조금은 이겨내기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칠곡의 화훼농업의 역사는 많이 길다고는 하기 어렵다. 처음 보급된 시기는 1970년대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농장에서 관엽류와 서양란인 신비디움, 풍란을 조직·배양하여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그 후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에 국제적인 큰 행사가 열리면서 꽃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 따라 농업기술센터에서 선도 농가를 중심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급된 지역은 왜관읍 금남리와 낙산리 일원이었다. 본격적인 재배라기보다는 시범 사업 위주였다. 이후 화훼지원 사업으로 8호의 농가에 2㏊에 연동 하우스를 지원해 국화와 거베라, 장미 등이 재배되었다. 화훼 재배가 다른 작물에 비하여 비교적 소득이 높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났다. 오이 후작으로 재배되던 방식을 넘어 점차 꽃 전업농으로 변신한 것이다. 현재 주로 재배되는 품목은 튤립과 백합, 카네이션, 국화 등이 재배된다. 칠곡에서 꽃 재배가 많은 금남리와 낙산리 일원은 낙동강변의 유기질이 많은 사질토로 이루어져 꽃 재배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백합은 일본 등지로 수출하기 위하여 기산면 봉산리와 각산리 일원에서 대량으로 재배되고 있다. 현재 칠곡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백합 조직 배양실을 갖추고 우수한 품질의 백합 종구를 생산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재배 기술과 양질의 토양 덕분에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 출하되면 타 지역에서 생산된 꽃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품질은 좋으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김해 지방의 화훼단지와 비교할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안고 있다. 김해와 비교할 때 가장 취약한 부분은 겨울철 온도차이다. 칠곡의 1월 평균기온은 0.1℃인 반면에 김해 지역은 2.7℃ 정도로 높아 겨울철 보온을 위한 연료비 부담이 크고 시설 규모면에서 농가별 재배면 적이 비교적 작은 것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의 하나다.
칠곡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재배되었던 곳은 왜관읍 봉계농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규모의 유리 온실에서 수경 재배를 통하여 장미를 주로 생산했었다. 지금은 경영난으로 일반 국화재배를 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든다면 수도원 농장의 난 조직배양을 들 수 있다. 금남리에 있는 수도원 농장은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수사들이 풍란 등 동양란을 조직·배양해 재배했었다. 일반 농가에서 꽃 재배 시기보다 훨씬 일찍 시작했었다.
[자동화 시설이 경쟁력]
농업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노동’이다. 계절적 중노동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농업을 회피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들어 농촌 지역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농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넓은 면적의 농사가 필요하지만 노동 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면적 확대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 영농자동화기기 보급 사업이다. 칠곡군은 노령화되어가는 농촌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고 면적 확대를 통하여 농가 소득을 증대시킨다는 목적으로 2000년부터 영농자동화기기 보급 사업을 실시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비닐하우스 보온 덮개 자동 개폐기와 농작물 운반기, 하우스 방제 시설 등이다. 연동 하우스 작업 시 오이와 토마토를 수확해 손수레로 운반했으나 하우스 중방에 파이프를 걸쳐 도르래 식으로 수확물과 비료 등 자재를 손쉽게 운반할 수 있게 됐다. 운반기를 이용하면 한번에 1백㎏ 정도의 농작물을 힘 안들이고 밖으로 운반할 수 있어 노동력이 크게 절감된 것이다.
순을 위로 올리는 순 유인 작업도 편하게 앉아서 할 수 있게 됐다. 보온 덮개를 덮고 벗기는 작업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로 참외 재배농가들은 이른 아침과 오후가 되면 모든 일을 제치고 보온 덮개를 벗기고 덮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이 작업은 해가 뜬 후와 해지기 직전 단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로 한 사람이 많은 량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곧 참외 재매 면적의 확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였다. 부부간에 참외 재배를 할 경우 2천 평 이상을 재배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동 개폐기가 보급되면서 이런 문제가 말끔이 해결되었다. 아침에 2시간 정도 걸리는 작업이 단 5분 정도면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우스에 설치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덮고 벗기는 작업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가당 재배 면적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되어 면적 확대를 통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하우스 방제 시설은 부부금슬을 좋게 한다고 싱글벙글 웃는다. 하우스 작업 중에 가장 힘든 작업 중의 하나가 병충해 방제다. 평균 50℃를 넘는 밀폐된 하우스 내에서 분무기 호스를 끌고 농약을 뿌리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이쪽 하우스에서 저쪽 하우스까지 호스가 이어지다보면 수백 미터는 족히 된다. 보통 남편이 분무기를 잡고 안에서 농약을 뿌리고 부인은 중간에서 호스를 잡고 남편을 돕는다. 그러나 더운 하우스 내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먼 거리에 있는 부부간에 작업 사인이 맞지 않아 짜증을 내고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다툼은 곧잘 가정불화로까지 번진다. 그러나 하우스 방제 시설이 보급되면서 이런 현상은 사라졌다. 하우스 내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도 농약의 살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칠곡에서 농약을 뿌리다가 의견 다툼으로 싸우는 부부는 없을 것이다. 이런 덕분에 1만평 이상의 참외 하우스 재배를 하는 농가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1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억대 농민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쌀농사 품질로 승부한다.]
쌀농사는 누가 뭐래도 우리의 농사를 대표하는 주작목이다. 시대에 따라 쌀에 대한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농업의 대표 주자라고할 수 있다. 따라서 칠곡에 있어서의 쌀의 비중이나 변화 과정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쌀농사에 있어서 변화의 큰 줄기는 면적은 줄고 단위 면적당 생산수량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양보다 질이 중요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1971년도 칠곡군의 쌀 재배 면적은 6,942㏊였으나 2011년도에는 2,613㏊였다. 40년 만에 무려 4,329㏊나 줄었다. 비율로는 62%가 감소했다. 반면에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322㎏에서 최대 풍작을 이룬 2008년에는 단위 면적당 수량이 514㎏으로 늘어나 60% 정도가 늘어난 양이다. 면적과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칠곡의 쌀농사도 1970년까지는 자포니카 타입인 일반벼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1971년을 기점으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통일벼 보급은 쌀농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통일벼의 가장 큰 장점은 병충해에 강하고 다수확 품종이란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식량부족이 심각하던 시절이라 통일벼는 식량 증산을 위한 정부 시책에 편승해 그 면적이 일반벼를 제치고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찰기가 부족하고 미질이 떨어지는 단점은 있지만, 국가의 최우선 과제인 “주곡의 자급자족”에는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식량 부족을 해소한 녹색혁명의 일등 공신은 통일벼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농업기술의 발전과 농기계의 확대 보급, 수리 시설 확충 등으로 쌀의 자급이 이루어지고 고품질의 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통일벼는 점차 재배 면적이 줄어들어 1983년경에 재배가 중단되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을 기점으로 좋은 미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크게 늘어나 현재는 생산량보다 미질에 중점을 두고 재배하는 실정이다. 현재 칠곡군에서 재배되는 주품종은 “주남벼”이지만 좀더 나은 품질을 위하여 ‘칠보벼’로 바뀌어 가는 추세다.
소비자들의 쌀 선택 기준이 미질로 바뀌면서 등장한 것이 브랜드쌀이다. 칠곡군에서 브랜드쌀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이다. 기산면에서 김종기 씨가 “금종쌀”이란 브랜드를 가지고 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브랜드쌀의 생산은 읍면 단위의 작목반 위주로 크게 늘어났다. 현재는 9개의 브랜드쌀이 생산되고 있다. 왜관읍의 “학나루쌀”과 “한백황토쌀”을 비롯해 북삼읍의 “초록솔잎쌀”, 석적읍의 “석청쌀”, 지천면의 “아카시아쌀”, 동명면의 “가산산성쌀”, 가산면의 “학마을맑은쌀”, 약목면의 “다송쌀”, 기산면의 “금종쌀”이 칠곡군에서 생산되고 있는 브랜드쌀이다. 이들 브랜드쌀은 우렁이 농법과 특수 미생물 농법, 쌀겨 농법등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어 2㎏과 4㎏, 5㎏, 10㎏, 20㎏ 등 다양한 형태로 포장, 판매되어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칠곡 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틈새시장 공략형 기능성 쌀이다. 그동안 많은 노력으로 브랜드쌀은 활성화 되었지만 미곡 중심의 농업을 펼치고 있는 상주, 의성, 문경, 안동 등 지역의 쌀과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쟁력을 키우고 대도시를 인접하고 있는 칠곡군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것이 바로 기능성 특수미다. 키를 크게 하고 성장발육을 돕는 “영안벼”, 반찹쌀인 “백진주벼”, 식미 증진용 유색미가 대표적인 쌀이다. 유색미는 녹색쌀과 붉은쌀, 검정쌀 등이 생산되고 있다. 바야흐로 쌀의 칼라화다. 이들 특수미는 종자확보가 어렵고, 재배가 까다로운 단점이 있지만, 건강식품 붐에 편승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반쌀보다 2~3배 높은 가격에 꾸준히 팔리고 있어 그 전망도 매우 밝다. 타 지역 농업인들로부터 종자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칠곡의 쌀농사는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고품질의 친환경쌀 위주로 재배될 것으로 전망된다.
[채소 보따리 하나로 아들, 딸 대학 보냈어요]
칠곡 농업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 근교농업이다. 대구라는 큰 소비 시장을 끼고 있어 도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빠른 시간에 신선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구와 인접한 지천면 지역이 그러하다. 이곳에서는 주로 대구 소비자들을 겨냥해 무와 배추, 상추, 알타리 무, 깻잎 등이 재배된다. 새벽에 수확된 농작물은 그날 아침에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대구에 공급된다. 공판장이나 도매시장에 출하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따리에 싸서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것이다. 일종의 보따리 상인인 셈이다. 아침 기차를 이용해서는 주로 대구역 인근의 번개시장이나 칠성시장에서 판매한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팔달시장을 주로 이용했다. 남편은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부인들은 보따리를 이용해 판매를 전담했다. 일종의 부부 분업인 셈이다. 이런 형태의 소매업은 노동력은 많이 들지만 소득 면에서는 월등히 높기 때문에 기꺼이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은 억척스런 어머니의 채소 보따리였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이곳의 채소 재배는 주로 재배기간이 짧은 작목을 선택한다. 조기에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라야만 연중 판매가 쉽기 때문이다. 지천면 지역에서는 1년에 5~6기작을 재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어느 지역보다 땅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도시 근교에 위치한 때문이다. 최근에는 웰빙 바람이 불면서 참비름이나 취나물 등도 많이 재배되어 그날그날 공급되는 관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