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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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炳喆 |
영어음역 | Do Byeongcheol |
이칭/별칭 | 증개변(曾開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윤오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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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 205[현 덕산리] |
성별 | 남 |
생년 | 1903년 1월 20일 |
몰년 | 1945년 8월 7일 |
본관 | 성주 |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03년 1월 20일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에서 도상필(都相弼)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자는 계현(啓賢), 호는 동포(東浦)이다. 대구 계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1927년 신간회(新幹會) 칠곡지회를 결성하여 민족교육운동을 폈다. 1945년에 체포되어 연행 도중 낙동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3·1독립운동 때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체포되었으나 연소자로 석방되었다. 1924년 11월 상해 임시정부의 지령으로 동향의 손병선(孫秉善) 등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7년 2월에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같은 해 4월 칠곡지회를 조직하고 무산자(無産者) 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민족운동 확산에 주력하였다. 1931년 5월에 신간회가 해산 당하자 다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1938년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1939년 11월 4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1945년 일본 패망 직전에 내린 애국지사 일제 검거령으로 동년 8월 7일 일경에게 연행 도중 낙동강 철교에서 투신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83년 5월 25일 ‘애국지사도병철선생순국기념비(愛國志 都炳喆先生殉國紀念碑)’를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의 애국동산에 세우고, 매년 광복절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