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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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浚謙 |
영어음역 | Han Jungyeom |
이칭/별칭 | 익지(益之),유천(柳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시호는 문익(文翼). 우량(友諒)의 삼십일세손 한지원(韓智原)에게 만(蔓)·간(蕳)·난(蘭)·영(英)이라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 한난(韓蘭)을 시조로 하는 청주한씨이다.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 닥실[저곡]으로 입향한 한방도(韓方道)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1589년(선조 19)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처 정자(正字)·전적(典籍) 등을 지냈다. 1592년에 예조정랑·원주목사 등을 지내고 사간(司諫)을 지냈다. 그 후 전라도관찰사·부제학 등을 지내고, 1599년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605년(선조 38) 도원수로서 칠곡군 인동[현 구미시]의 천생산성 축성에 대해 “경상도 천생산성(天生山城)은 영남 중도(中道)의 보장(保障)으로 급변이 생기면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다.”라고 아뢰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전리(田里)로 쫓겨났다. 1617년에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할 적임자로 뽑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5도(道)의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국경 수비에 힘썼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딸이 인열왕후로 책봉되자 영돈령부사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유천유고(柳川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영돈령부사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