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경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70
한자 范慶文
영어공식명칭 Beom Gyeongmun
이칭/별칭 유문(孺文),검암(儉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8년연표보기 - 범경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80년 - 범경문, 연경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01년 - 범경문, 경희궁 위장 임명
몰년 시기/일시 1801년연표보기 - 범경문 사망
거주|이주지 장안의 광교(廣橋) 근처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묘소|단소 범문경 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최촌말
성격 인물[시인]
성별
본관 금성(錦城)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묘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시인.

[개설]

범경문(范慶文)[1738~ 1801]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유문(孺文), 호는 검암(儉巖)이다.

[가계]

범경문의 아버지는 범지구(范志九)이고 어머니는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며, 할아버지는 범태조(范泰造)이다.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초계 정씨(草溪鄭氏)이며, 형은 범종현(范宗顯)이다.

[활동 사항]

범경문은 17~18세에 문장으로 두각을 나타내 관직에 있는 사대부들 사이에 이름이 있었다. 범경문의 집은 아침마다 배오개[梨峴] 시장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장안의 광교(廣橋) 근처에 있었다고 전한다. 여항 시인(閭巷詩人)인 김시모(金時模)·김진태(金鎭泰) 등과 교유하며 창작 활동을 하였다. 최윤창(崔潤昌)·마성린(馬成麟)·백경현(白景炫) 등과 사귀었으며, 천수경(千壽慶)을 비롯한 송석원 시사(松石園詩社)의 구성원들과도 교유하였다. 음주를 좋아하고 성격이 맑고 넓어 당시 이름 있는 시인들과 시를 주고받았으므로 범경문이 남긴 시 작품의 다수가 수창시(酬唱詩)이다. 1775년(영조 51) 부인상을 당하였다. 이후 내의원 서리(內醫院書吏)가 되었고, 1780년(정조 4) 43세로 연경사(燕行使)가 되어 중국에 다녀왔다. 1801년(순조 1) 경희궁 위장(慶熙宮衛將)이 되었고, 그해 4월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범경문의 시는 화평 온후하되 한편으로 천기(天氣)가 발현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서로는 『풍요삼선(風謠三選)』과 『검암산인 시집(儉巖山人詩集)』이 있다. 『검암산인 시집』은 1814년에 간행되었는데, 2권 1책이고 현재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최촌말에 묘가 있었으나 구리시 체육관 건립으로 인해 이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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