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66
한자 李滌
영어공식명칭 Lee Cheok
이칭/별칭 급지(汲之),영호정(映湖亭)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2년연표보기 - 이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이척, 죽산 부사 재임
몰년 시기/일시 1639년연표보기 - 이척 사망
부임|활동지 죽산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묘소|단소 이척 묘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지도보기
성격 인물[문신]
성별
본관 전주(全州)
대표 관직 훈련 도정|죽산 부사|동지 중추부사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이척(李滌)[1572~1639]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초명은 설(渫), 자는 급지(汲之), 호는 영호정(映湖亭)이다.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규빈(李奎賓)이고, 할아버지 이로(李櫓)이다.

[활동 사항]

이척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죽산 부사(竹山府使)였는데, 왕이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을 수비하였다. 이에 왕이 특별히 금대(金帶)와 금권(金圈)을 하사하였다. 청과의 화의(和議)를 반대하고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고,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37년(인조 15) 부총관(副摠管)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1638년 훈련원 도정(訓練院都正)이 되었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이척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한 공으로 금대와 금권을 하사받았다. 1638년 기우제의 헌관으로 아마 한 필을 사급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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