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릉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33
한자 健元陵表
영어공식명칭 Geongwonreungpyo
이칭/별칭 『건원릉 표석 탁본』,『건원릉 비문』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문서
저자 고종
권책 1첩
규격 23.5x35.3㎝[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奎10136 기준]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건원릉 표석의 탁본.

[개설]

건원릉 비각에는 1408년(태종 8)에 능 조성과 함께 세운 신도비와 1900년(광무 4)에 세운 표석이 남아 있다. 대한 제국을 선포한 후 고종(高宗)은 1899년(광무 3)에 태조를 고황제(高皇帝)로 추존하였으며, 이 사실을 반영하여 1년 후 표석을 세운 것이다. 전면과 음기 모두 고종의 어필로 되어 있다. 『건원릉표』는 이 표석의 어필을 탁본한 것으로,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3건이 남아 있다.

[저자]

『건원릉표』는 고종이 직접 쓴 어필을 탁본한 것이다. 고종은 조선의 제26대 왕으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다. 외세의 칩입이 가시화되는 시기 대한 제국을 선포하는 등 국가의 자주성을 지키려 노력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편찬/간행 경위]

『건원릉표』는 고종의 어필로 건원릉의 표석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탁본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탁본을 만든 시기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건원릉 표석을 새로 세운 것은 외세의 침입이 가시화되던 때에 대한 제국의 독자성을 보여 주고자 하였던 고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평가된다.

[형태/서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서지 정보에 따르면 『건원릉표』[奎10136]의 크기는 가로 23.5㎝, 세로 35.3㎝이다. 표지에는 '건원릉 비문(健元陵碑文)'이라 쓰여져 있다.

[구성/내용]

『건원릉표』 서두에는 전서체로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大韓太祖高皇帝健元陵)'이라 쓰여져 있는데, 이는 표석의 전면부를 탁본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후면의 음기를 탁본하였다. 음기는 해서체로 쓰여져 있는데 태조의 생애와 공적에 대해 간략하게 기록하고, 1899년 고황제로 추존한 사실도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건원릉표』태조를 고황제로 추존한 후 건원릉에 세운 표석을 탁본한 것으로, 건원릉이 가지는 중요성과 대한 제국의 독자성 확보를 위한 고종의 노력을 잘 보여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국립 문화재 연구소, 『역사의 숲, 조선 왕릉』(눌와, 2007)
  • 국립 문화재 연구소 문화 유산 연구 지식 포털(http://portal.nrich.go.kr)
  • 문화재청 조선 왕릉(http://royaltombs.cha.go.kr)
  •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http://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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