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27
한자 李仲燮墓
영어공식명칭 LeeJungseob Myo|Tomb of LeeJungseob
이칭/별칭 대향(大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남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956년 9월 6일연표보기 - 이중섭 묘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916년 9월 16일 - 이중섭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956년 9월 6일 - 이중섭 사망
현 소재지 이중섭 묘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
성격 묘소
양식 토분
관련 인물 차근호|한묵
소유자 개인 소유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서양화가 이중섭의 묘.

[개설]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호는 대향(大鄕)이다. 일제 강점기 때 평양의 종로 공립 보통 학교에 다녔는데, 이 무렵 고구려 벽화가 그려진 고분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평북 정주 오산 학교에서 화가 임용련·백남순 부부의 지도를 받으며 일제의 식민 지배에 반발하여 한글 자모로 된 그림을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 민족의 한을 표현하는 소를 즐겨 그렸다. 1935년 일본의 테이코쿠 미술 학교에 유학을 갔으며, 1938년 일본의 자유 미협전에서 태양상, 1939년 자유 미술 협회전 회원이 되면서 「서 있는 소」, 「산의 풍경」 등을 출품해 각광을 받았다. 1940년에는 도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미술을 통한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신미술가 협회'라는 미술 단체를 만들어 민족 미술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1945년 귀국하여 원산에서 일본인 마사코[한국명 이남덕]과 결혼하고 원산 사범 학교 교원이 되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종군 화가로서 부산, 제주 등지를 전전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가난하여 담배갑 은박지[은지화]에 그림을 그렸다[은지화는 한국 화가 최초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영구 소장됨]. 1952년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두 아들과 부인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과 그림 편지로 대신했다. 1955년 1월 18일 단 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1956년 영양 부족과 심한 간염으로 사망하였다.

[위치]

이중섭 묘는 망우 공원 관리 사무소를 지나 오른쪽 순환로 방향에 있다[묘지 번호 103535].

[변천]

이중섭 묘는 1956년 9월 6일에 조성되었다.

[형태]

이중섭 묘는 토분 형태로 조성되어 있고, 묘 앞에는 비석과 아이들의 모습을 조각한 조각품이 있다. 친구인 한묵이 글씨를 쓰고, 후배 조각가 차근호가 조각하였다.

[금석문]

이중섭 묘의 비석 전면에는 '대향이중섭 화백묘비(大鄕李仲燮 画伯墓碑)'라고 적혀 있지만, 후면에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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