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흘 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88
한자 趙云仡墓
영어공식명칭 JoUnheul Myo|Tomb of JoUnheul
이칭/별칭 석간,서하옹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고려 후기/조선 전기
집필자 김명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332년 - 조운흘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404년 - 조운흘 사망
성격
관련 인물 조운흘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기 문신 조운흘의 묘.

[개설]

조운흘(趙云仡)[1332∼1404]은 고려 말·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 호는 석간(石磵) 또는 서하옹(棲霞翁)이다. 평장사 조맹(趙孟)의 30대손이다.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61년 형부원 외랑, 1374년 전접 총랑이 되었다. 1377년 좌간의대부, 판전교시사 등에 등용되었다. 1380년 사직하고 광주 고원강촌에 살면서 판교원·사평원을 중수하여 '원주'라 자칭하고 신분을 감추었다. 1388년 전리 판서로 기용됐으며 밀직제학에서 서해도 관찰사로 내려가서 왜구를 토벌하는 공을 세웠다. 이듬해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에 올랐다. 1390년(공양왕 2)에는 계림 부윤(鷄林府尹)이 되었으며, 1392년(태조 1) 조선 개국 후에 강릉 부사에 임명됐다. 1393년 병을 핑계대고 사직해 광주로 내려갔다가 다시 검교 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이 되었다. 그 뒤로 관직에서 떠나 경기도 광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73세에 사망했다.

[위치]

조운흘 묘는 『고려사』 권112에 "양주 아차산 남쪽 마가야에 안장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서 묘 소재지가 경기도 구리 지역인 것으로 추정한다.

[변천]

조운흘 묘는 "일월(日月)로써 주기(珠璣)를 삼고 청풍명월(淸風明月)로써 술잔을 삼아 옛 양주(楊州) 아차산(峩嵯山) 남쪽에 장사지냈다."라고 한다.

[현황]

조운흘 묘는 『고려사』 권112에 "사후에 아차산 남쪽 마가야에 안장하였다."라는 기록에 따라 문헌상으로 묘 소재지를 구리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향토 사료 조사를 통한 근거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의의와 평가]

조운흘 묘는 문헌상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향토 사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근거는 전무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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