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천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13200
한자 牛尾川里
영어공식명칭 Umicheon-ri
이칭/별칭 우미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아차동에서 양주군 구리면 아천리로 병합.

[정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을 구성하는 마을의 옛 이름.

[개설]

우미천리(牛尾川里)아차산 동쪽 사면에 자리한 마을의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행정 구역 개편이 단행되기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에 속하였다. 우미천리는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과 더불어 양주군 구지면 아차동(峨嵯洞) 전 지역 및 토막리(土幕里)의 일부 지역과 병합하여 양주군 구리면 아천리(峨川里)로 편제되었다. 서울특별시에서 구리시로 진입하면 처음 나타나는 마을이다.

[명칭 유래]

주변의 산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소나무가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소나무를 베어도 움이 잘 튼다는 데에서 우미내 명칭이 유래하였다. 우미내는 우리말로 된 지명이지만, 이를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우미내(牛尾內)로 기록되거나 또는 우미천(牛尾川)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우미내는 장자못을 통해 한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의 이름으로도 간주되어 우미천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주군 구리면 아천리에 편제되었으며, 1973년 구리읍 승격과 함께 양주군 구리읍 아천리에 속하였다.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하여 경기도 남양주군 구리읍 아천리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1986년 구리읍이 구리시로 승격하면서 구리시 아천동으로 편제되었다. 아천동(峨川洞)이라는 명칭은 아차동의 '아'자와 우미천리의 '천'자를 따서 생겨난 것이다.

우미천리는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침수 피해가 적어 취락 입지의 여건이 양호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 시에는 저습지인 토말, 벌말, 돌섬 등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우미천리로 이주해 오기도 하였다. 우미천리는 과거에는 너머말, 양지말, 건너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건너말과 양지말이 있던 자리에 한국 석유 공사 아천동 유류 저장소가 1981년에 건설되면서, 지금은 너머말만 남아 있다. 너머말은 지금도 우미내 마을로 불린다. 우미내 마을에는 구리시의 장자못 설화와 관련하여 마을의 안녕과 홍수로부터의 안전을 비는 반신상이 남아 있으며 현재도 제를 올린다. 우미내 마을에는 고구려 박물관과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우미천리는 지금의 구리시 우미내 마을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하는 곳이며, 행정 구역상 구리시 교문 1동에 편제되어 있고, 법정동은 구리시 아천동에 속한다.

[관련 기록]

1880년대에 일제가 작성한 『구한말 지형도』 '송파진'에는 우미내(牛尾內)로 표기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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