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13199
한자 峨嵯洞
영어공식명칭 Acha-dong
이칭/별칭 아치울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아차동에서 양주군 구리면 아천리로 병합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아천리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아천리에서 남양주군 구리읍 아천리로 소속이 변경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경기도 남양주군 구리읍 아천리에서 구리시 아천동으로 편제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을 구성하는 마을의 옛 이름.

[개설]

아차동아차산 동쪽 사면에 자리한 마을의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행정 구역 개편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에 속하였다. 아차동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때 양주군 구지면우미천리(牛尾川里) 전 지역 및 토막리(土幕里)의 일부 지역과 병합하여 양주군 구리면 아천리(峨川里)로 편제되었다. 아차동에 포함된 동(洞)은 현대의 행정 구역 체계가 아니라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 아차동아차산 동쪽 골짜기 가운데 가장 넓고 깊숙한 골짜기에 있다. 아천 단층에 의해 형성된 계곡의 말단부에 자리하였다.

[명칭 유래]

아차동 명칭은 아차산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하였으며, 아치울이라 불리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아차동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주군 구리면 아천리에 편제되었으며, 1973년 구리읍 승격과 함께 양주군 구리읍 아천리에 속하였다.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하여 남양주군 구리읍 아천리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1986년 구리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구리시 아천동으로 편제되었다. 아천동(峨川洞)이라는 명칭은 아차동의 '아' 자와 우미천리의 '천' 자를 따서 생겨난 것이다. 지금은 아치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전원주택도 많이 건설되었다.

아차동은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침수 피해가 적고, 마을 뒤로는 아차산,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적 특징으로 취락 입지의 여건이 양호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 때에는 저습지인 토말, 벌말, 돌섬 등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아차동으로 이주해 오기도 하였다. 아차동의 마을 앞을 통과하는 국도 43호선이 개통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60여 호에 불과한 마을이었지만, 도로 개통 이후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아치울 마을에 들어서서 아치울길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마을은 응달짝, 오른쪽에 있는 마을은 양지짝 등으로 불렸다. 양지짝에서 더 깊숙한 곳에는 윗골 마을이 있었으나, 윗골 마을 자리에 1981년 한국 석유 공사 아천동 유류 저장소가 건설되면서 지금은 윗골에 살던 사람들과 외부의 이주민이 모여 사는 새 마을이 아치울 마을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 형성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아차동은 구리시의 서쪽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아차산로의 아치울 마을 입구 교차로의 왼쪽에 자리한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구리시 교문 1동에 속해 있으며, 법정동으로는 구리시 아천동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1880년대에 일제가 작성한 『구한말 지형도』 '송파진'에서는 지금의 아치울 마을 자리에 아차동(峨嵯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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