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13197
한자 里門洞
영어공식명칭 Imun-dong
이칭/별칭 이문동,이문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 이문동에서 양주군 구리면 교문리로 통합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교문리가 됨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교문리에서 남양주군 구리읍 교문리가 됨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경기도 남양주군 구리읍 교문리에서 구리시 교문동이 됨

[정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을 구성하는 마을의 옛 이름.

[개설]

이문동아차산의 동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 이름으로, 안골[윗말], 박촌[아랫말], 샛다리, 도래미, 가능골, 갈매지 등의 마을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이문동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에 속하였다. 이후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과 더불어 양주군 구리면 교문리(橋門里)가 되었다.

[명칭 유래]

이문동은 동네 입구를 가로막아 낸 문이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명칭이다. 동네 입구의 문은 도적떼를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마을 앞에 담과 출입문을 갖추어 세운 후 밤에는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한편 마을 입구에 세워진 문은 리(里)를 표시하는 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문안이라고도 불리며, 구리시청 건너편에는 마을 이름을 딴 이문안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1880년대 작성된 『구한말 지형도』 '송파진'에는 한자 표기가 다소 다른 이문동(利門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이문동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양주군 구리면 교문리가 되었으며, 1973년 구리읍 승격과 함께 양주군 구리읍 교문리가 되었다.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하여 남양주군 구리읍 교문리 소속이 되었고, 1986년 구리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구리시 교문동으로 편제되었다. 현재 사용되는 교문동이라는 명칭은 지금의 한다리 마을을 가리키는 백교리(白橋里)의 '교' 자와 이문동(里門洞)의 '문' 자를 따서 생겨난 것이다.

이문동에 들어선 마을은 구릉지의 계곡 사면에 입지한 특징이 있으며, 주변에 비해 고도가 높아 침수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 이러한 이점으로 인해 한강 변의 저습지인 토막리, 벌말, 돌섬 등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홍수 시에 이문동으로 이주해 오기도 하였다. 이문동에 있는 마을은 배산임수의 지형에 입지하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이문동은 구리시를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아차산로와 구리시를 동서 방향으로 통과하는 경춘로가 교차하는 교문 사거리와 아차산로에 둘러 싸인 지역이다. 이문동은 구리시와 서울특별시의 경계를 형성하는 아차산의 동쪽 사면에 자리한 마을들을 포함한다. 지금은 이 일대에 구리시청을 비롯하여 구리 아트홀, 구리 소방서, 구리 경찰서 등과 샛다리 마을, 한다리 마을 등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구리시 교문 1동에 속하고, 법정동으로는 교문동에 포함된다.

[관련 기록]

일제가 작성한 『구한말 지형도』 '송파진'에는 이문동(利門洞)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에는 이문동(里門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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