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13첩 4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12115
한자 大東輿地圖(一三牒四列)
영어공식명칭 Daedongyeojido(13cheop 4Yeol)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승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61년(철종 12)연표보기 - 『대동여지도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9일연표보기 - 『대동여지도 보물 제850-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12월 7일연표보기 - 『대동여지도 보물 제850-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대동여지도 보물 제850-3호 지정
소장처 성신 여자 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로34다길 2[동선동 3가]
소장처 서울 역사 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신문로 2가 2-1]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저자 김정호

[정의]

19세기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서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 일대를 그린 지도.

[개설]

『대동여지도』는 70여 장의 목판에 새겨 모두 22첩으로 만든 지도이다. 당시의 지리지를 집대성한 지도로서, 우리나라를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까지 22층으로 나눈 후, 다시 동서 방향으로 각 폭마다 끊어 제작된 지도이다. 동서 방향의 개별 지도를 이어서 한 폭의 지도첩이 만들어진다. 책처럼 접을 수 있게 제작되었다. 축척은 약 16만분의 1이다. 『대동여지도』는 도로 표시선에 10리 간격으로 점을 찍어 거리를 표시함으로써 실질적인 축척을 각 도면 위에 나타낸 특징이 있다. 지도의 뒷부분에는 편찬 목적과 지도 작성의 원리를 서술한 「지도 유설(地圖類說)」이 포함되어 있다.

[편찬/간행 경위]

『대동여지도』는 목판본으로 1861년(철종 12)에 김정호가 제작하여 초간본을 찍었으며, 1864년(고종 1)에 다시 간행되었다.

[서지적 상황]

1861년(철종 12)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는 소축척의 분첩 절첩식(分帖折疊式)으로 이루어진 전국 지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대동여지도』는 총 17종이며, 그 가운데 4종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4종 가운데 3종은 1861년에 제작한 신유본이고, 1종은 1864년에 지도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수정하여 간행한 갑자본이다. 현존하는 17종의 『대동여지도』 가운데 총 3종[성신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울 역사 박물관 소장, 서울 대학교 규장각 소장]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에 해당하는 여러 장의 지도를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여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각 권의 책은 동서 80리를 기준으로 접고 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22층을 모두 연결한 『대동여지도』는 가로 4.2m, 세로 6.6m의 크기이다. 각 층의 지도를 접은 지도책의 크기는 가로 20.1㎝, 세로 30.2㎝이다. 책을 펼치면 가로의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난다.

[구성/내용]

각 군현은 원으로 표시하고 그 안에 지명을 표기하였고, 각 군현의 경계는 점선으로 표시하였다. 지도의 내용에는 『청구도』와 같이 전국의 산천, 해도, 읍치, 역참, 창고, 봉수, 도로 등이 표시되어 있다. 구리시의 동쪽을 흐르는 왕숙천왕산천(王山川)으로 표기되었다. 한양 도성에서 동쪽으로 뻗은 도로가 망우리 고개를 지나 왕숙천 건너편의 평구역(平丘驛)으로 이어지며, 왕숙천 서쪽으로는 퇴계원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다.

현재의 구리시 동구릉에는 건원(建元)이라는 글자가 붉은색 원 안에 기록되어 있다. 동구릉의 동쪽으로는 검정색 사각형과 함께 동(東)이라는 표기가 있는데, 이는 동구릉 조성에 필요한 자재를 보관하던 동창(東倉)을 의미한다. 한강에 접한 곳에는 미음(渼音)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는데, 미음은 당시 양주목에 속하였던 미음면을 의미하고, 미음면의 일부는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시 지금의 구리시를 구성하는 양주군 구지면(龜旨面)에 합병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동여지도』는 『해동 지도』나 『1872년 지방도』와 같이 군현 단위로 제작된 지도 수준의 대축척 지도가 아니어서 현재의 구리시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 지도를 통해 현재의 구리시와 인접한 지방 간의 지리적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