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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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諄 |
영어공식명칭 | Song Soon |
이칭/별칭 | 혼원(渾元),망촌(忘村)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엽 |
[정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송순(宋諄)[1550~1616]의 본관은 진천(鎭川)이며, 자는 혼원(渾元), 호는 망촌(忘村)이다. 광해군 때 대사간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가계]
송순의 친아버지는는 송계임(宋繼任)이며, 송미복(宋眉福)에게 입양되었다. 할아버지는 송신(宋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송환상(宋環商), 외할아버지는 김학(金鶴), 장인은 박율(朴栗)이다.
[활동 사항]
송순은 북인(北人)의 영수 이산해(李山海)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82년(선조 15) 33세에 식년시 을과 3위로 급제하였다. 1587년 사헌부 지평을 지낸 뒤 1592년 강원 도사(江原都事)가 되었고, 1596년(선조 29) 사헌부 집의를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전라도 관찰사·호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598년 병조 참의와 우부승지를 역임한 뒤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1600년(선조 33) 이조 참의가 되었다. 1602년(선조 35) 대사간이 되어 정원군(定遠君) 이부(李琈)의 일로 사직하였다.
1608년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하자 정창연(鄭昌衍)의 천거로 이조 참의가 되어 이이첨(李爾瞻)과 가까이 지냈다. 이후 병조 참판, 대사간, 대사헌 등을 지냈다. 1615년(광해군 7) 형조 판서·호조 판서·지의금부사를 거쳐 1610년 동지춘추관사에서 대사헌·좌윤·병조 참판이 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 대사헌에 다시 임명되고 그해 2월에 사망하였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었으나 구리시 체육관 건립으로 인해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송순은 1616년 의령군(義靈君)으로 봉해졌으나 사후인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관작을 삭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