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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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器匠 |
영어공식명칭 | Akgijang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서 전통 악기를 만드는 기술 및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
[개설]
악기장(樂器匠)은 가야금과 거문고를 비롯한 각종 한국의 전통 악기를 만드는 공예 기술 및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하며, 국가 지정 무형 문화재[중요 무형 문화재] 혹은 시·도 지정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국가 지정 무형 문화재로서의 악기장은 1971년 2월 24일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3월 16일에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63호였던 북 메우기를 악기장에 통합시켰고, 2012년 7월 23일에는 궁중 의례 중 아악(雅樂) 연주에서 사용하는 편종(編鐘)과 편경(編磬)의 제작 기능이 추가되었다. 구리시에는 전통 북의 제작 기능을 보유한 악기장 윤덕진이 거주하며 활동하였으나 2002년 사망 후 아들 윤종국과 윤신이 전수교육조교로서 활동하고 있다.
[구리 지역의 악기장]
악기장 중 전통 북을 만드는 기술을 '북 메우기'라고 한다. 북 메우기에서의 북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을 제외한 가죽 북[혁고(革鼓)]을 의미하며, 가죽을 북통에 씌우는 작업을 가리키는 '메우는' 과정이 북의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므로 기술 전체를 북 메우기라고 부른다. 북 제작에 사용되는 가죽은 생가죽의 기름을 빼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무두질 과정을 거쳐 마련하며, 북통은 통나무의 속을 파내거나 나무판자를 둥글게 붙인 후 건조시켜 만든다. 건조된 북통의 안팎에 한지·삼베·광목 등을 바른 후 양면에 가죽을 씌우고, 다시 가죽을 건조시킨 후 북소리를 들으며 완성도를 검사한다. 검사를 통과한 북에는 최종적으로 종류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가장자리 둘레에 장식용 못을 박아 마무리한다.
구리 지역에서는 윤덕진(尹德珍)[1926~2002]이 북 메우기 악기장으로 활동했다. 윤덕진은 1991년 5월 북 메우기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구리시 수택동에 있었던 구리 문화원에 전통 북 공방을 열었고 1997년에는 공방을 구리시 토평동으로 옮겨 사망할 때까지 전통 북의 제작과 후계자 교육에 전념하였다. 윤덕진이 사망한 후 장남 윤종국과 차남 윤신이 부친을 계승해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의 전수 교육 조교로 인정되어 맥을 잇고 있으며, 3년에 한 번씩 윤덕진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