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12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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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忘憂里面 |
영어공식명칭 | Manguri-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중랑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경기도 구리시의 지명 유래가 된 과거의 행정 구역 명칭.
[개설]
망우리면(忘憂里面)은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양주군에 속하였던 망우리면은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양주군 구지면과 통합하여 양주군 구리면이 되었다. 이때 현재의 구리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명칭 유래]
망우리면은 망우리라는 고개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망우리 명칭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구리시 구릉산에 자신의 묘를 만들 자리를 정해 놓고 궁으로 돌아가다가 근심을 잊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왕릉 터는 이성계 사후에 선정한 것이어서 망우리 명칭의 유래는 전설로만 전해지며, 후세에 지어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망우리면은 1914년 이전까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으로 편제되었으며, 망우리면에는 묵동리, 내동리, 하리, 중리, 상리, 봉현리, 봉황동, 신현리, 능후동, 능내동, 목곡리, 양원리, 방축리, 입암리 등의 자연 마을이 포함되어 있었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주군 구리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당시 망우리면에 속하였던 마을의 행정 구역 변경은 다음과 같다. 묵동리를 비롯하여 내동리와 하리의 일부가 묵동리로, 중리와 하리의 각 일부 지역이 중하리로, 상리를 비롯하여 봉현리, 봉황동, 중리의 각 일부 지역이 상봉리로, 신현리를 비롯하여 능후동, 능내동, 내동리, 목곡리 등지가 신내리로, 양원리를 비롯하여 방축리, 입암리, 목곡리 일부 지역이 망우리로 재편되었다.
이들 지역은 1963년에 구리면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시에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고, 묵동리는 묵동으로, 중하리는 중화동으로, 상봉리는 상봉동으로, 신내리는 신내동으로, 망우리는 망우동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1988년에 중랑구가 신설되면서 양주군 구리면에서 분리된 지역은 모두 서울특별시 중랑구로 소속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망우리면에 속했던 지역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랑구에 속한 지역 가운데 면목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다. 지금의 동 명칭은 중화동을 제외하면 1914년 양주군 구리면에 속했던 당시의 리 명칭과 일치한다. 중화동은 중하리가 변경된 것인데, 이는 1963년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중하리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아래[下]를 나타내는 글자 대신 화합[和]을 의미하는 글자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주목에는 '망우리면은 양주목의 동남쪽으로 20리에서 60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양주목에는 망우리면에 송계교(松溪橋)가 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서울특별시 중랑구 중화동과 상봉동 사이의 중랑천에 있는 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