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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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邵城聯芳集序 |
영어공식명칭 | Preface of Sosungryunbangjip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39년 - 「소성련방집서」최흥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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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12년 - 「소성련방집서」최흥벽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08년 - 「소성련방집서」간행 |
배경 지역 | 「소성련방집서」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
성격 | 서문 |
작가 | 최흥벽 |
[정의]
조선 후기 학자 최흥벽이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거처한 채선길·채선견형제의 문집에 부친 서문.
[개설]
최흥벽(崔興璧)[1739~1812]은 조선 후기 때 학자로 자는 사교(士敎), 호는 두와(蠹窩), 본관은 경주이다. 최흥벽은 최흥원(崔興遠)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이광정(李光靖)과 정종로(鄭宗魯) 등과 교유하였다.
「소성련방집서」는 최흥벽의 문집인 『두와집(蠹窩集)』 권칠에 수록된 작품이다. 「소성련방집서」 등장인물인 채선견(蔡先見)[생몰미상]의 자취는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채선견이 만년에 학문을 강론하던 성재서당(盛才書堂)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사적이다. 성재서당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길 120[미대동 169]에 있다. 채선견은 이곳에 정자(亭子)를 짓고 만년에 학문을 강론(講論)하였는데, 그 뒤 후손들이 채선견의 높은 덕행을 널리 기리고자 새로 수축하고 그 이름을 ‘성재서당’으로 바꿨다.
[구성]
「소성련방집서」는 서문(序文)의 전형적인 형식구조를 지니며, 단락구성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첫 단락에서는 채선길·채선견 형제에 대하여 개괄하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채선길·채선견 형제의 행적을 제시하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락에서는 『소성련방집(邵城聯芳集)』의 간행과정과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용]
「소성련방집서」는 첫 번째 단락에서 채선길(蔡先吉)[생몰미상]·채선견 형제의 출신과 학맥을 드러내어 퇴계학파의 한 지류(支流)를 담당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이어서 채선길·채선견 형제의 학문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채선길·채선견 형제의 처세의 모습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후세를 권면(勸勉)하고 있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소성련방집』이 간행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단락에서는 『소성련방집』이 후대에 끼칠 영향과 효과성을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특징]
「소성련방집서」는 글의 주인공인 채선길·채선견 형제를 중국 남송시대 채연(蔡淵)[1156~1236]과 채침(蔡沈)[1167~1230] 형제에 비견하며 칭송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소성련방집서」 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대구지역 영남학파의 학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있는 압로정(狎鷺亭)에 대한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가 제시되어 있다. 또한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소유정(小有亭)에 관한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