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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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聞書堂讀書 |
영어공식명칭 | Listen to a book reading at Seod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86년 - 「문서당독서」최상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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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49년 - 「문서당독서」최상룡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96년 - 「문서당독서」간행 |
배경 지역 | 「문서당독서」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
성격 | 한시|근체시|오언율시 |
작가 | 최상룡 |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최상룡이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있는 독암서당에서 감회를 읊은 한시.
[개설]
최상룡(崔象龍)[1786~1849]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다. 자는 덕용(德容), 호는 봉촌(鳳村)이다. 최상룡은 달성(達城)의 강동(江洞)[현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출생했다. 최상룡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했다. 세상이 어지러워 분경(奔競)[엽관운동]이 심해짐을 보고 향리로 돌아와 독암서당(讀巖書堂)을 지어 후진을 가르치니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문전을 메웠다. 고을의 과거 한 사람의 명부를 보관하는 사마소(司馬所)를 중수하고 향약의 세부지침을 만들어 자치제도를 확립하고 마을의 풍속을 규정했다. 당시 대학자인 홍직필(洪直弼)·유치명(柳致明)·김익동(金翊東) 등과 경전과 예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경전(經典)의 주요 내용을 도시(圖示)[그림이나 도표 따위로 그려 보임]하여 맥락을 분명하게 가르쳤다. 성리학과 훈고학을 깊이 연구해 「사서변의(四書辨疑)」·「재이록(在邇錄)」·「소학췌의(小學贅疑)」·「계몽차의(啓蒙箚疑)」·「정주서변의(程朱書辨疑)」 등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저서로는 『봉촌문집(鳳村文集)』 22권이 있다.
[구성]
「문서당독서(聞書堂讀書)」는 8행으로 이루어진 오언율시로, 최상룡의 문집 『봉촌선생문집(鳳村先生文集)』 1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문서당독서」의 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세간열아이(世間悅我耳)[세상에서 나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 중에]/숙약독서성(孰若讀書聲)[무엇이 책 읽는 소리와 비슷한가]/
종고여금슬(鐘鼓與琴瑟)[종과 북소리 그리고 가야금 비파소리요]/경구우관생(磬球又管笙)[경쇠와 명구 그리고 관악기와 생황이로다]/
청지비불락(聽之非不樂)[들으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요]/완저역망정(玩著易忘情)[감상하면 쉽게 심정을 잊을 수 있다네]/
고차이오향(顧此咿唔響)[이 글 읽는 소리를 들어보면]/유문유회정(愈聞愈會精)[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정기가 모이네]
[특징]
「문서당독서」는 짝수 구(句)에 경(庚)계열의 운자를 두었다.
[의의와 평가]
독암서당은 최씨문중의 후손들 공부를 위해 지었으나, 문중 자손들뿐 아니라 근방 지역 자제들에게도 강학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유능한 인재를 배출한 강학 공간이다. 「문서당독서」는 독암서당의 기능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자, 작가인 최상룡의 삶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