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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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興震 |
영어공식명칭 | Choe Heungjin |
이칭/별칭 | 빈경(賓卿),월애(月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진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최씨 집안의 선비.
[가계]
최흥진(崔興震)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빈경(賓卿), 호는 월애(月厓)이다. 최흥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경류(崔慶濡)이고, 할아버지는 최수갑(崔壽甲)이며, 아버지는 최구석(崔龜錫)이다. 어머니는 권복형(權復亨)의 딸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지사(知事)를 지낸 이세사(李世師)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와 이중록(李重祿)의 딸인 진성이씨(眞城李氏)인데 슬하에 네 아들 최진국(崔鎭國), 최진쾌(崔鎭夬), 최진일(崔鎭一), 최진억(崔鎭億)과 정발(鄭撥), 김익찬(金益燦), 이의섭(李宜燮), 이양운(李養運)에게 출가한 네 딸이 있다.
[활동 사항]
최흥진은 효성이 있어서 부모를 극진히 섬겼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돈독하였다. 일찍이 달리동의 선산 아래에 서재(書齋)를 지어서 서책을 쌓아두고 여러 종제들과 간간이 시를 지으며 늙도록 공부를 하였다. 20살에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 자주 왕래하며 이륜(彛倫)[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을 배웠다. 평소 화목한 행실과 인자하고 충직하며 두터운 덕이 집안과 마을에 많이 베풀었다. 같은 종족이나 친구에게 어려움을 도와주고 환난을 구휼함에 소홀하지 않았다고 한다.
[묘소]
최흥진의 묘소는 해북촌 묘곡(妙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