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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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認[東區] |
영어공식명칭 | Choe In |
이칭/별칭 | 달부(達夫),사인(士仁),한천(寒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진 |
[정의]
임진왜란 당시 공산의진군 의병장이자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삼충사에 제향된 문인.
[가계]
최인(崔認)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달부(達夫), 또 다른 자는 사인(士仁), 호는 한천(寒川)이다. 최인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자하(崔自河)는 선공감감역(監役)을 지냈고, 할아버지 최해(崔海)는 발포만호(鉢浦萬戶)를 지냈으며, 아버지 최종옥(崔宗沃)은 감찰(監察)을 지냈다. 어머니는 선략장군(宣略將軍) 하희수(河希壽)의 딸인 진주하씨(晋州河氏)이다. 부인은 참봉 한형(韓衡)의 딸인 청주한씨(淸州韓氏)인데 슬하에 두 아들 최동립(崔東岦), 최동은(崔東嶾)을 두었다. 최동립은 호군(護軍)을 지냈다.
[활동 사항]
최인은 타고난 성품이 강개하고 대절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대구광역시 팔공산에서 공산의진군이 창의(倡義)할 때 참여했다. 최인은 손처약, 최동보와 함께 경주[지금 경상북도 경주시]의 문천회맹에 참가해 경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동생 최계(崔誡), 조카 최동보(崔東輔)도 의병을 일으켜서 3인이 대구[지금 대구광역시], 경산[지금 경상북도 경산시], 영천[지금 경상북도 영천시] 등지에서 의병 활동해, 사람들이 최씨 문중에서 나온 세 명의 충신이라는 이름인 삼충(三忠)이라 부르며 칭송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거주하던 대곡(大谷)에 정사(精舍)를 지어 소요 자적하며 性情(성정)을 길렀다.
[학문과 저술]
최인은 장현광(張顯光), 김우옹(金宇顒), 권춘란(權春蘭), 이덕홍(李德弘), 조호익(曺好益), 최동보(崔東輔) 등과 경학(經學)을 강론하며 도의로 사귀었다.
[묘소]
최인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해서촌(解西村) 대곡(大谷)에 있는데, 이휘재(李彙載)가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