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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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永鎭 |
영어공식명칭 | Choe Yeongjin |
이칭/별칭 | 서진(書鎭),치수(稚修),둔암(遁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진 |
출생 시기/일시 | 1785년 12월 12일 - 최영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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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55년 2월 9일 - 최영진 사망 |
출생지 | 최영진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 |
묘소|단소 | 최영진 묘소 -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
성격 | 선비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 출신 선비.
[가계]
최영진(崔永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서진(書鎭), 자는 치수(稚修), 호는 둔암(遁巖)이다. 최영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최수천(崔壽天)이고, 할아버지는 최윤석(崔倫錫)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흥발(崔興發)이다. 어머니는 집의(執義)를 지낸 이급(李級)의 딸인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부인은 통덕랑 이기순(李基淳)의 딸인 진성이씨(眞城李氏)인데 슬하에 세 아들 최로, 최서, 최도와 승지(承旨) 이휘승(李彙承), 정민저(鄭民箸), 장석기(張錫騏), 손진호(孫振琥)에게 출가한 네 딸을 두었다.
[활동 사항]
최영진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빼어났다. 9살에 종숙부[작은아버지뻘 되는 종숙] 천옹(喘翁) 최흥립(崔興岦)에게 배웠다. 최흥립은 최영진에 대해 “이 아이가 안정되고 자상하며 공손하고 삼가니 장래를 바랄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최흥립은 『통감』, 『사략』과 경서, 제자백가 등을 최영진에게 가르쳤으며, 나이에 맞지 않게 초학들이 어려운 『주역』도 쉽게 이해하였다고 한다. 다시 종숙부 두와(蠹窩) 최흥벽(崔興璧)의 문하에서도 공부를 했다.
[묘소]
최영진의 묘소는 해서촌 대왕현(大王峴)[지금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