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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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慶涵 |
영어공식명칭 | Choe Gyeongham |
이칭/별칭 | 군양(君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진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개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 최씨 집성촌에 살았던 최경함(崔慶涵)[1633~1699]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군양(君養)이다.
[가계]
최경함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계(崔誡)는 현령으로 참판에 증직되었고, 할아버지 최동집은 호가 대암(臺巖)인데 학행으로 대군사부(大君師傅)가 되었으며, 아버지 최위남(崔衛南)은 성균관생원(生員)이다. 어머니는 참의 이지화(李之華)의 딸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부인은 목사(牧使) 이정기(李廷機)의 딸인 영양이씨(永陽李氏)인데 슬하에 아들 최수학(崔壽學)과 김세흠(金世欽)[문과 교리(校理)], 문창진(文昌晋), 송후(宋煦), 정두원(鄭斗元), 박운구(朴雲衢), 전성기(全聖基), 김서린(金瑞麟), 이국형(李國馨), 박징채(朴徵彩) 등에게 출가한 아홉 딸을 두었다. 1655년(효종 6)에는 최경함의 할머니 이씨가 장손이었던 최경함에게 노비와 전답을 지급한 「별급문기(別給文記)」를 전했다. 「별급문기」로 재산의 일부를 특별히 지급한 이유는 할머니 이씨 슬하에서 자란 최경함이 아들을 낳아 가세를 이어가도록 했다.
[활동 사항]
최경함은 타고난 성품이 매우 특이하고 효성과 우애로 행실이 돈독하였으며, 부모가 살아계실 때 봉양하는 일과 돌아가신 뒤 장례하는 일에 성심을 다하였다. 훤칠한 장부로 고인(古人)의 풍모가 있어서 최경함을 똑바로 쳐다보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묘소]
최경함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북면 송하리(松下里) 앞 독산(獨山)에 있다. 묘지(墓誌)는 최시교(崔峕敎)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