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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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幹 |
영어공식명칭 | Lee Donggan |
이칭/별칭 | 여간(汝幹),침산(砧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대암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인 학자.
[가계]
이동간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여간(汝幹), 호는 침산(砧山)이다. 조선 중기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재춘(李載春), 아버지는 이익룡(李翼龍),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덕후(柳德垕)의 딸이다. 부인은 장영모(蔣永謩)의 딸인 아산장씨(牙山蔣氏), 박상현(朴尙玄)의 딸인 밀양박씨(密陽朴氏), 허장(許璋)의 딸인 김해허씨(金海許氏) 세 명이다. 아들은 4명인데 이시점(李時漸), 이시발(李時發), 이시두(李時斗), 이시곤(李時坤)이다.
[활동 사항]
이동간은 1757년(영조 33) 4월 20일에 침산리(砧山里)[지금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암리(臺巖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대암동]에 세거하였다. 이동간은 기질이 강직하고 매우 총명하였다고 한다. 10세 때 경전과 역사서를 읽고 깊은 뜻을 탐구하느라 먹고 자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익룡이 「면학육경(勉學六警)」과 「봉선팔조(奉先八條)」를 지어서 주자 이를 체득하여 부지런히 실천하였다. 1784년(정조 8)에 부친상을, 1813년(순조 13)에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선대의 일을 계승하는 데 전념하였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였을 뿐 아니라 아우와 우애가 있었으며 가족과 화목하고 벗과 신의가 있었다. 만년에는 신의와 바른 덕이 사방에 두루 퍼져 따르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1822년(순종 22) 8월 5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6세였다.
[학문과 저술]
이동간의 저서로 『침산집』이 있다. 이동간은 일찍이 요순 이하 성현부터 퇴계 이황까지 전해진 심법(心法)을 채집하여 「전심도(傳心圖)」를 지었고, 또 「심무체용변도(心無體用辯圖)」를 지어서 반성하는 자료로 삼았다. 또한 「성현심학사도설(聖賢心學四圖說)」은 요순부터 퇴계 이황에게로 전해진 성현의 심법(心法)을 도해(圖解)하였다. 「성현도통연원록(聖賢道統淵源錄)」은 역대 성현들의 도통 전수에 관한 설을 각 경전과 문집류에서 뽑아 모아 체계화하였는데, 우리나라의 학자로는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 등의 순으로 그 계통을 삼았다.
이동간은 농암 이현보와 하연(賀淵) 이중량(李仲樑)이 쌓은 음덕을 계승하고 아래로 석병(石屛) 이휴운(李休運)과 약산(藥山) 이익룡(李翼龍)의 훌륭한 행실과 학문을 본받아 이를 계승하였다.
[묘소]
이동간의 묘소는 대구 승현(蠅峴)[팔현, 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