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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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士昌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필준 |
이전 시기/일시 | 189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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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1년 - 사창사 개수 |
현 소재지 | 사창사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두명길 49-5[두룡리 306]![]() |
성격 | 사우|사당 |
양식 | 맞배지붕|익공식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에 있는 이숭인의 영정을 모신 사우.
[개설]
사창사(士昌祠)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성주 이씨는 16세기 후반 남포 지역에 입향하였는데, 어느 시점으로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지만, 이숭인의 사우를 건립하고 추모하고 있다. 이숭인은 고려 말의 학자로, 공민왕(恭愍王)[재위: 1351~1374] 대 문과에 급제하고, 예의산랑(禮儀散郞), 예문응교(禮文應敎), 문하사인(門下舍人),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살해되었을 때 일당으로 몰려 유배를 갔으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심복 황거정(黃居正)에게 유배지에서 살해당했다. 보통 고려 삼은(三隱)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 포은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를 일컫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야은 길재 대신 도은 이숭인을 넣기도 한다.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 두루니마을에 있다.
[변천]
처음에는 보령시 남포면 소송리에 사우가 건립되었으나, 사우가 퇴락하자 1891년 후손들이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로 이건하였다. 두룡리에는 이숭인의 11세손 이형원(李馨元)의 효자 정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1년 개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형태]
맞배지붕의 익공식 건물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정면에 ‘사창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 이숭인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현황]
성주이씨대종회에서 음력 10월 14일 사창사에서 도은공 이숭인과 판서공 이숭문(李崇文)에게 시향제(時享祭)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