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 동창 산신제와 부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2069
한자 仁倉洞東倉山神祭-府君祭
영어공식명칭 Inchangdong Donchang Sasinje And Bugunj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동창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지도보기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초닷새 사이
신당/신체 산신 바위|부군당|그림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창 마을에서 정월에 지내는 산신제와 부군제.

[개설]

동창 마을에서는 산신제와 부군제를 지낸다. 제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에 동네 어른들이 날을 받아서 정한다. 제일은 정월 초닷새를 넘기지 않는다. 육십갑자로 생기복덕을 보아서 제관을 뽑는다. 제주를 선출하고 나면 산에 가서 황토를 가져다 집 대문 양쪽 옆에다 놓고 새끼를 꼬아 놓아서 산에 올라가는 집임을 표시한다. 제주는 일체 부정을 피하고 근신한다. 제비는 각 가구별로 정성껏 거둔다. 제물은 검정 수퇘지, 용떡, 북어, 대구포, 삼색실과, 술을 사용한다. 수퇘지는 직접 산 위에서 잡아 상체는 산신제 제물로 바치고 하체는 부군제 제물로 사용한다. 동창 마을 공동 제의에 올려지는 제물 중에 특이한 것은 '용떡'이다, '용떡'은 일종의 시루떡인데, 용의 모양을 흉내 내어 만든 떡이다. 술병의 형태처럼 만들어 눈썹, 코, 귀까지 붙여서 시루 위에 올려놓는다. 동창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 때문에 용떡을 만든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동창 마을의 동제는 정확히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모르고 있으나 대략 500여 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산제는 이전에는 돼지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서 목을 따고 잡아서 산신 바위에서 제를 올렸다. 현재는 개인 사유지가 되어 금지 구역이 되면서 부군당에서 산신제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뒤 동구릉 정상에 있는 산신 바위는 산신제를 지내 오던 곳인데, '치성 바위'라고도 불린다. 산 아래에 있는 부군당은 원래 청기와가 몇 개 얹어진 기와집 형태였으나 한국 전쟁 때 불타서 현재의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벽돌 건물로 다시 지었다. 부군당 안에는 부군 할아버지, 부군 할머니, 산신 할아버지, 산신 할머니의 등을 그린 그림이 모셔져 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마을에서 모셔지는 산신 내외와 부군 내외의 영험이 대단했다고 한다. 한 해는 산치성을 소홀히 지냈는데 그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고 농사도 잘 되지 않아서 그 후로는 더 정성을 드렸다고 한다. 부군당 앞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절차]

본래는 산신 바위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다시 산 밑으로 내려와 부군당에서 부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개인 사유지가 되어 산신 바위까지 올라갈 수가 없어서 산 아래의 부군당에서 산신제와 부군제를 함께 지낸다.

[축문]

부군축(府君祝)

"유세차 ○○년 ○월삭 초○일 ○○ 감소고우 부군존령지하 동창부락 인민일동 안과태평 재액소멸 우마번창 백곡풍등 신기보우 근이 청작서수 공신존 상향[維歲次 ○○年 ○月朔 初○日 ○○ 敢昭告于 府君尊靈地下 東倉部落 人民一同 安過太平 災厄消滅 牛馬繁昌 白穀豐登 神其保佑 謹以 淸酌庶羞 恭伸尊 尙饗]"

산신축(山神祝)

"유세차 ○○년 ○월삭 초○일 ○○ 감소고우 산신존령지하 동창부락 인민일동 안과태평 재액소멸 우마번창 백곡풍등 신기보우 근이 청작서수 공신존 상향[維歲次 ○○年 ○月朔 初○日 ○○ 敢昭告于 山神尊靈地下 東倉部落 人民一同 安過太平 災厄消滅 牛馬繁昌 白穀豐登 神其保佑 謹以 淸酌庶羞 恭伸尊 尙饗]"

[부대 행사]

제의가 끝나면 제주들은 제물을 일일이 창호지에 싸서 집집마다 나눠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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