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의 역사를 전하는 사람들, 문화관광해설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70017
영어공식명칭 People Telling the History of Guri, Cultural Heritage Commentator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철수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서 아차산동구릉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해설사들의 이야기.

[자연과 문화, 역사를 조율하는 지휘자]

겨우내 눈 소식을 기다렸으나 진눈깨비만 몇 차례 내렸을 뿐 동구릉에는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났다. 2월 28일 한낮에 함박눈이 내렸다. 함박눈은 동구릉에서 가장 큰 건물인 정자각도 가리고, 높이가 30m를 넘나드는 소나무도 실루엣이 된다. 이 눈발을 가르며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수릉(綏陵) 홍살문 앞에 멈췄다. 나도 가던 길을 멈춰 관광객들 틈에 은근히 끼어들었다. 기가폰의 작은 스피커에서 노신사의 입놀림에 따라 역사가 쏟아져 나왔다. 노신사의 손짓에 따라 관광객들은 고개를 위로 올리기도 하고 좌우로 돌리기도 한다.

“이 왕릉은 현릉(顯陵)입니다. 세종 대왕의 아들이자 단종 대왕의 아버지인 문종 대왕현덕 왕후의 무덤입니다. 그런데 왕과 왕비가 72년 만에 만났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왕릉 주인공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곁들여 단종 애사를 풀어 간다. 남편[문종]과 시아버지[세종]의 축복 속에 아기 단종을 출산했으나 산후병으로 3일 만에 젖도 먹이지 못하고 이별을 한 세자빈. 훗날 문종이 등극하자 현덕 왕후가 된 왕비와 반가(班家)의 서방님인 세조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사이 눈발이 잦아들었다. 하얀 눈밭 속 조선 왕릉은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축복이다. 눈 속에서 듣는 문화 해설은 큰 추억이다. 노신사는 관람객들을 이끌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건원릉으로 향한다. 눈은 완전히 멎었다. 태조 건원릉은 하얀 원시의 모습을 드러낸다. 경이롭다. 노신사의 기가폰에서는 속사포가 이어진다. 태조의 활 솜씨와 조선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역사 속 정의, 한씨와 강씨 부인 이야기, 무덤 위의 억새풀을 덮은 태조와 태종의 사연…. 이렇게 세 곳의 왕릉을 거치는데만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났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밭에 눈사람을 만든다. 어른들은 잔설이 날리는 가운데 질의와 응답이 이어진다. 문화재는 이렇게 아이들 성화에 찾았다가 어른들이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관심을 끌어내는 노신사의 노련미에 경의심이 솟는다. 노신사의 정열 때문에 마지막 겨울이 뜨겁다. 이 노신사는 구리시에서 배출한 문화 관광 해설사다. 자연과 문화재를 적절히 조율하여 연주하는 문화 역사의 지휘자이다.

구리시는 한강아차산, 왕숙천동구릉을 잇은 문화 역사 벨트가 있다. 아차산은 고대 삼국 시대 격전장이자 고구려 보루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한 고대 역사를, 동구릉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를 비롯한 일곱 명의 왕과 열 명의 왕비가 누워 있어서 중세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문화 보고(寶庫)다. 구리시와 구리 문화원은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시민들에게 쉽게 알리고, 문화 역사적 가치를 부가하기 위해 15년 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를 양성하여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지만 이를 움직이는 이들은 해설사입니다. 어떻게 문화재를 움직이냐구요? 쉽지요. 요즈음은 SNS 시대 아닙니까? 해설이 끝나고 얼마 있으면 문자가 옵니다. 자신의 SNS 계정에 사진과 영상으로 동구릉을 소개했다고 말예요. 허참…. 그 분들은 관심이 큽니다.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없지요. 매일 공부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노년의 해설사는 바로 황진영 해설사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이며, 경력이 9년이 된 베테랑이지만 해설사 방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혹 실수는 없었는지 시간을 되돌려 본다. 해설사들의 면면을 보고 싶고, 듣고 싶었다. 두 주간을 동구릉아차산 해설사 방을 찾아 해설사들의 진면목을 살폈다. 동구릉에는 박명섭·이병탁·손명렬·안영기·황진영·이미자·정남선·김남신과 일본 출신 아키오, 태국 출신 가록완 등 해설사가 열 명이 있다. 아차산에는 이면옥·이형옥·신윤아·이해안·송기범·이미나·이정원과 일본 출신 미호꼬, 중국 조선족 출신 김실매 등 해설사 아홉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해설사들은 교장, 국어 교사, 역사 교사, 의상 디자이너, 구리시 의원, 경기도 의원, 다문화 여성, 기자, 생태 해설사, 전업주부 등 다양한 직업군과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3년 동구릉아차산을 지켜 왔다. 그래서 가슴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을 신명나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동구릉에서 10명의 해설사를 만나다]

해설사들의 대부(代父)는 박명섭 소장이다. 구리 문화원 사무국장과 부원장을 거쳐 구리 향토사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면서 많은 해설사를 배출했다. 78세 나이도 그저 숫자일 뿐 복습과 예행 연습으로 조선 왕릉 해설사 중에서 최고라고 정평이 나 있다. 또한 박명섭 소장은 구리 문화원 출범의 일등 공신이고, 아차산고구려 유적과 유물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화 해설?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에 대한 기초도 튼튼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학문 70%, 세기 30%. 학문이 앞서지 않는다면 모래 위의 성입니다. 가끔 외부에서 아이들을 이끌고 와 어설프게 왕릉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납니다. 알밤을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 중 최고령은 80세의 이병탁 해설사이다. 관내 인창 초등학교는 물론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초등학교를 두루 거쳤고, 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부양 초등학교에서 정년 퇴임을 한 우리 지역 교육의 산 역사이다. 현재는 구리 문화원 상임 부원장으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최고령임에도 체력만큼은 최고라고 젊은 해설사들이 한목소리를 낸다. “젊어지죠. 옛날 같으면 뒷방 늙은이밖에 더 하겠어요? 자연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고 동구릉에 오는 일만큼 신나는 일이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저 동구릉에 나오는 이틀은 항상 맑음입니다.”

동구릉 해설사 가운데 태국인 가녹완도 있다. 가녹완은 태국의 항구 도시 송크라 출신으로, 13년 전 한국인과 혼인을 했다. 4년째 동구릉을 지키고 있다. “한국어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조선 왕릉의 우수한 것들을 동남아, 특히 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아직 태국 사람들이 스스로 동구릉을 찾지 않지만 태국어로 해설하는 날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동구릉에 오는 날은 선생님들을 따라 해설하는 모습을 배우고, 어려운 말과 용어를 적고 사전을 찾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녹완의 꿈은 태국의 관광객이 한국을 찾고, 특히 동구릉을 방문해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것이고, 빨리 한국어가 익숙해지면 내국인을 대상으로 해설을 하는 것이다. 가녹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동구릉 해설사들에게 해설 기법을 물었다. “해설을 하려면 능의 주인공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 연도는 통째로 외워야 해요. 해설에 있어서 날짜가 빠지면 팥 없는 찐빵입니다. 왕의 탄생, 세자 책봉, 가례, 등극, 승하, 국장은 물론 국왕으로서의 중요한 사건과 업적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손명렬 해설사] “내가 알고 지식을 가두어 두면 죽은 지식이다. 남에게 전달을 해야 비로소 올바른 지식이 된다. 역사 해설은 팩트(fact)가 있어야 한다. 너무 이성적이면 감동이 없고, 감동이 없으면 호감이 없다. 약간의 위트가 섞인 감성적 스토리를 전개해야 답사객의 뇌리에 오래 남는다.”[안영기 해설사] "동구릉에는 일곱 명의 왕과 열 명의 왕비가 있습니다. 왕비의 삶과 왕의 삶을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 나갑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순간순간 판단을 해 포인트를 정하고 중점적으로 대화를 나누듯이 관람객을 안내합니다. 한 바퀴 돌고나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그리고 내려와 혹 잘못 전달되거나 부족한 설명은 없었는지 체크를 합니다. 무한 반복이지만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이미자 해설사] “한 차례에 적게는 2~4명, 많게는 100여 명을 이끌 때가 있습니다. 유치원생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역사 동아리, 사회 단체, 봉사 단체, 동문, 인문학 답사 등 각양각색이라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지요. 예약을 받고 배정을 받았을 때 첫 마디를 어떻게 던지는가에 따라 그 만족도가 달라집니다. 사전 정보를 통해 친밀감을 줘야 서로 신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정남선 해설사] “해설사 교육을 받고 칠 년간 아차산대장간 마을에 있었어요. 순환 근무 명을 받고 동구릉에 왔을 때 막막했습니다. 까먹은 해설 정보들을 되찾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어요. 한 해가 지나니 안정이 됐습니다. 자연과 생태를 먼저 공부했기 때문에 이동을 하면서 곁들이면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물론 왕릉 해설이 90% 생태가 10% 정도지요. 역사와 자연의 만남 동구릉은 정말 보물입니다."[김남신 해설사]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구리시에 살림집을 차리고 우연한 기회에 해설사가 됐습니다. 지금은 일본 관광객 위주로 안내를 하고 있지만 최종 목표는 한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것입니다. 가끔 일본어 가이드들이 하는 터무니없고, 엉터리 안내에 가슴이 아픕니다. 좀 더 철저하게 공부를 시켰으면 좋겠습니다."[아끼오 해설사]

[아차산에서 고구려의 기상을 전하다]

내친김에 아차산 대장간 마을을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하필이면 아차산 고구려 유물 전시관은 수리 중이고 동절기라 아차산 고구려 유적지 해설은 안식 중이었다. 슬그머니 대장간 마을을 둘러 봤다. 아직 겨울 기온이 돌고 대장간 마을 골목 바람이 만만치 않다. 관람객마저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아차산 대장간 마을은 드리마 「태왕 사신기」 촬영 장소로 개장 즈음에는 욘사마 배용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일본 팬들이 날마다 찾았던 명소였다. 일본의 한류 열풍이 시들해지자 극성[?] 팬과 중화권의 일부 관람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서, 경기 동북부에서 유일한 고구려와 삼국 시대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13년이나 지킨 터줏대감 이면옥 해설사와 8년이나 머문 이미나 해설사를 만났다.

"대장간 마을이 개관하기 전 그러니까 초창기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관람객을 만나 안내했습니다. 전화로 인상착의를 묻고, 인사를 하고 산으로 올랐지요. 그때는 뭐 있었나요. 큰바위 얼굴, 석곽분, 3층 석탑, 대성암을 거쳐 봉수대, 아차산 4보루까지 띄엄띄엄 쉬어 가며, 묻고 답하는 대화식 해설을 했지요. 그때는 주로 가족 프로그램으로 한두 가족을 모시고 산에 올랐습니다. 한 프로그램이 3시간 정도 걸립니다. 지금에 비하면 상전벽해지요." 터줏대감답게 이면옥 해설사는 대뜸 말한다. 초기에 힘들지 않은 사안이 있었던가. 이면옥 해설사의 말을 빌리면, 이렇게 버스 정류장에서 안내를 하다가 입구에 컨테이너로 해설사 사무실을 꾸몄다. 그러다 아예 4보루 현장 해설 시스템이 도입됐다. 사진 자료, 안내판, 음료, 간식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전 10시 산으로 오른다. 무작정 등산객을 상대로 하루에 서너 번 소위 앵벌이 해설을 했다. 아차산 고구려 유적도와 설명을 적은 리플릿을 나눠 주고, 배너도 설치하고 홍보도 했다. 한마디로 '여기까지 어떻게 올랐는데 무의미하게 내려갈 수는 없다.' 많은 공을 들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시간이 흐르자 주말이 되면 해설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족, 친구, 동료 단위로 말이다. 생리 현상이 큰 문제다. 지금은 익숙해져 잘 참는다. 해설사들의 안식기인 동절기에는 학습을 통해 새로운 해설 매뉴얼을 준비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 어렵고 힘들지요. 대장간 마을이 들어서고 저희들도 분주해졌습니다.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대장간 마을과 아차산 보루를 이원화해 운영했습니다. 평소에는 대장간 마을을 지키고, 산에는 일 년에 동절기를 빼고 1인당 5~6회 정도 오릅니다. 항상 날씨가 변수입니다. 햇볕이 쨍쨍하면 그늘막도 쳐야지요. 저도 여자랍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황당합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지요. 황당함과 보람이 산꼭대기 해설의 매력입니다. 한가한 시간 구리 한강 시민 공원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서 너무나 큰 수채화를 봅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이게 다 힐링이지요."

8년차 이미나 해설사는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혼인을 하고 임신을 하자 퇴사하고 육아에 전념을 했다. 10년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모든 것이 단절됐다. 산후 우울증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2005년 구리 문화원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 2년간 단련을 받고 아차산에 눌러앉았다. "지금까지 삶에서 가장 잘 한 것을 꼽으라면, 이 일이예요. 처음에 산에 오를 땐 강신 약수터까지가 한계였어요. 안내를 해야 하는데 숨이 턱 막히는 거예요. 지금은 다람쥐처럼 다니지요. 아차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보기보다 험한 산입니다. 얕잡아 보다간 큰코다쳐요. 4월까지 얼음이 있는 곳도 있어요. 보루에 올라 삼국과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살피고, 내려오는 길에 2보루에 잠시 앉아 명상에 잠깁니다. 영감을 받아 글로 옮기는 작업도 합니다." 아차산대장간 마을에는 이들 외에도 생태 해설을 겸하는 이형옥, 전국 해설사 경진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신윤아, 김명희, 송기범, 이정원 해설사가 맹활약을 하고 있고, 일본인과 중국인을 맞이하는 미호꼬와 김실매 해설사가 고구려 대장간 마을아차산 그리고 구리시의 역사와 문화 향기를 전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1), 문화관광해설사는 어떻게 될 수 있나요?]

구리시에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는 방법은 한길뿐이다. 경기도청 문화 관광국에서 해설사 모집 공고를 하면, 구리시청 문화 관광과에서도 같이 공고를 한다. 1차 서류 심사, 2차 면접을 통해 교육생을 선발한다. 4박 5일간 집중 교육과 테스트를 통해 수료를 하게 되고 구리시의 각 해설지에서 해설 지식을 익힌 후 다시 테스트를 통과하면 정식으로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어 활동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설사로 선발이 되면 아차산동구릉에 배치된다. 관리는 구리시에서 한다. 그리고 오 년에 한 번 정도 순환 근무를 하는데, 그래야 오롯한 구리시표 해설사가 되는 것이다. 비로소 구리시 문화재의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현장에서 해설사로 활동을 하더라도 매년 50시간 인터넷 연수[인강]를 받아야 하고, 자신만의 해설 기법을 3분짜리로 만들어 영상으로 제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문화관광해설사가 되면 국내 견학과 해외 연수를 받을 수 있는 특전을 받는다.

[그것이 알고 싶다(2), 이런 관람객을 싫어요 VS 좋아요]

열 명의 해설사들을 만나 소위 진상 즉 예의 없는 관람객은 어떤 부류가 있는지 물어봤다. 한결 같은 대답은 해설하는 데 중간에 끼어드는 부류다. 그 외 ▲자신만 아는 지식으로 공격하듯 질문하는 부류, ▲드라마와 역사를 혼동하는 부류, ▲예약을 해 놓고 연락도 없이 늦게 오는 부류, ▲해설 도중 시간이 없다고 자르고 떠나는 부류, ▲야사를 주장하는 부류 등을 꼽는다. 이들에 대한 대처법도 나름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해설하는데 이런저런 방법으로 끼어들면 슬그머니 대열을 역으로 이끌어 뒤로 보내는 고단수와 더 높은 지식으로 콧대를 꺾는 방법 등으로 응수한다. "역사 드라마가 여러 계층에 인기가 많아요. 요즈음 주초의 조선 개국, 주말의 세종 시대 역사물 때문에 이와 관련된 건원릉[조선을 개국한 태조]과 현릉[세종의 아들 5대 문종현덕왕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지요. 역사 관련 교양 프로그램 중 조선 시대와 관련된 것이 방영되면 질문이 많아집니다. 저도 역사를 전공했지만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합니다."[정남선 해설사] 그래서 조선 왕릉 해설사들은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것은 물론 야사와 TV 프로그램까지 두루 섭렵해야 한다.

반대로 다시 만나고 싶은 관람객은 한 부류다. 집중해서 듣고, 질문이 있다면 이동할 때나 해설을 마치고 사전 지식을 확인하는 부류다. "수첩에 꼼꼼히 적는가 하면 스마트폰에 녹음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다 주고 싶지요. 그리곤 잘 해야겠다고 스스로 기를 넣습니다. 이런 관람객을 맞이하면 해설 시간 1시간 30분이 짧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곤해도 마무리 질문까지 답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이병탁 해설사] 이렇게 2시간 안팎을 이동하면서 해설을 하기 위해선 체력이 중요하다. 평소 애주가인 손명렬 해설사는 해설이 있기 전 날은 절주를 하고 거실을 오가며 해설안을 최소 한두 번은 되뇌고 침대에 오른다. 얼마 전 대수술을 받은 안영기 해설사는 매일 동구릉을 두 바퀴 돌면서 체력 단련을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3), 동구릉과 아차산의 문화재는요?]

구리시는 면적 33.31㎢로 경기도 전체 면적의 0.31%에 불과한 아주 작은 도시다. 그중 동구릉의 면적은 약 1.9㎢[약 58만 평]인데, 구리시 면적의 6%에 해당된다. 동구릉은 1970년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6월 27일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태조의 양력 제삿날[제향일]이었다. 동구릉은 '경복궁 동쪽에 아홉 기의 능이 있는 곳'을 의미하며 왕 7위, 왕비 10위 등 총 17위가 있는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건원릉(健元陵), 제5대 문종현덕 왕후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 왕후, 계비 인목 왕후목릉(穆陵),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 왕후휘릉(徽陵), 제18대 현종명성 왕후숭릉(崇陵),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 왕후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 왕후원릉(元陵), 추존왕[제24대 헌종의 아버지] 문조와 신정 왕후수릉(綏陵), 제24대 헌종과 원비 효현 왕후, 계비 효정 왕후경릉(景陵)이 있다. 이 사적지에는 개별로 지정된 문화재가 4종이 있다. 건원릉 정자각[보물 제1741호], 숭릉 정자각[보물제 1742호], 목릉 정자각[보물 제1743호]과 건원릉 태조 신도비[보물 제1803호]이다. 그리고 왕릉의 조성법과 제향 등은 해설사를 통해 정보를 공유 할 수 있다.

아차산(峨嵯山)은 구리시와 서울시 광진구·중랑구와 접하고 있으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용마봉[광진구], 망우산[중랑구], 액끼산[구리시]으로 부르는데, 봉화산과 홍련봉까지 통틀어 아차산이라 부른다. 아차산은 원래 아단산(阿旦山)이었으나 이성계가 역성혁명에 성공하고, 왕좌에 오르자 왕의 이름을 단(旦)으로 바꾸었다. 이에 왕의 이름을 산(山)이 범할 수는 없는 법이어서 아차(阿且)로 했다가 다시 한자를 아차(峨嵯)로 바꿔 오늘에 이른다. 아차산은 원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 광개토왕이 1차 남하하고, 이후 장수왕이 475년에 백제의 개로왕아차산에서 죽이고 한성을 정복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됐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에 나당 연합군이 북진하여 553년부터 신라 땅이 되었다. 아차산에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공을 막기 위해 퇴뫼식으로 쌓은 아차산성(阿且山城)[사적 제234호]이 있고, 아차산 일대 보루군[사적 제455호], 명빈 묘[조선 태종 후궁의 묘, 사적 제364호], 아차산 3층 석탑[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205호] 등의 지정 문화재와 석곽묘, 대성암[범굴사], 효빈 묘[조선 태종 후궁 묘] 등 비지정 문화재가 있다. 특히 아차산 보루군은 1994년 구리 문화원에서 진행한 지표 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1997년부터 2012년까지 꾸준히 학술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역사적 가치가 커 2004년에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구리의 역사를 전하는 사람들]

구리시는 면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도시 중 하나다. 서울의 1/18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서울 못지않은 자긍심이 넘치는 도시다. 바로 아차산의 보루군과 동구릉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망우리 공원[공동묘지]의 근현대 주요 인물 가운데 2/3가 구리시 경계에 있으며, 아차산 자락에 홍응홍상의 묘와 신도비, 삼괴당 신종호아차산인 신잠, 이순신을 도와 해전을 펼쳤던 이억기 장군, 사노동나만갑 묘와 신도비, 채유후의 묘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과 유적들이 있다. 이런 문화와 역사의 자산을 안내하고 말로 풀어주는 해설사들이 있기에 구리시가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구리시에 오세요. 구리시의 해설사들이 동구릉과 아차산은 물론 필요한 곳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참고문헌]
  • 『구리시지』(구리시, 1996)
  • 인터뷰(구리 문화관광해설사 11명, 201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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