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56
한자 羅良佐
영어공식명칭 Na Yangjwa
이칭/별칭 현도(顯道),명촌(明村)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8년연표보기 - 나양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83년 - 나양좌, 평강 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95년 - 나양좌, 공조 좌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06년 - 나양좌, 사헌부 장령 임명
몰년 시기/일시 1710년연표보기 - 나양좌 사망
부임|활동지 평강 - 강원도 평강
부임|활동지 삭녕 - 경기도 연천|강원도 철원
유배|이배지 삭녕 - 경기도 연천|강원도 철원
묘소|단소 나양좌 묘 -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정(安定)
대표 관직 장령

[정의]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현도(顯道), 호는 명촌(明村)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 나성두(羅星斗)이며, 어머니는 판서 김남중(金南重)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나만갑(羅萬甲)이고, 동생은 나석좌(羅碩佐)이다.

[활동 사항]

나양좌(羅良佐)[1638∼1710]는 어려서 윤선거(尹宣擧)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송준길(宋浚吉)이 나양좌의 덕행을 추천하여 희릉 참봉(禧陵參奉)에 임명되었고, 동몽 교관(童蒙敎官)을 거쳐 상의원 주부(尙衣院主簿)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83년(숙종 9)에 고령의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평강 현감(平康縣監)을 잠시 지냈지만 시사(時事)가 잘못된 것을 알고 이내 사직하였다. 1687년 스승 윤선거의 누명을 벗기려고 상소하였다가 삭녕(朔寧)으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사면되어 돌아왔다. 1689년 기사 환국(己巳換局)으로 자형인 김수항(金壽恒)과 매제 이사명(李師命)이 극형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천리길을 달려가 이사명의 상을 치렀다. 1695년(숙종 21) 이후로 공조 좌랑(工曹佐郞), 충청 도사(忠淸都事), 종친부 전부(宗親府典簿), 삭녕 군수(朔寧郡守) 등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모두 사임하였다. 1706년(숙종 32)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임명되었으나 이미 69세였고, 정묘년 윤선거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글을 올린 일을 인용하여 관직을 사양하였다. 1710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나양좌의 저서로는 『명촌 잡록(明村雜錄)』이 있으며, 1926년 백두용이 편찬한 『해동 역대 명가 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 글씨가 있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묘가 있다. 묘지명은 윤증(尹拯)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