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34
한자 綏陵表
영어공식명칭 Sureungpyo
이칭/별칭 『수릉 비문』,『수릉 표석 탁본』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틀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문서
저자 고종
권책 1첩
규격 23.5×35.3㎝[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奎10012 기준]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수릉 표석의 탁본.

[개설]

수릉의 비각 내에는 두 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다. 하나는 1890년 익종신정 왕후를 합봉한 뒤 세운 합봉비다. 전면에 전서체로 '조선국익종대왕수릉신정왕후부우(朝鮮國翼宗大王綏陵神貞王后祔右)'라고 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는 1902년(광무 6)에 세운 것이다. 대한 제국 선포 후인 1899년 익종신정 왕후문조 익황제(文祖翼皇帝)신정 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한 사실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전면과 후면 모두 고종이 직접 짓고 쓴 어필이다. 『수릉표』는 이 어필을 탁본한 것이며,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3건이 남아 있다.

[저자]

『수릉표』는 고종이 직접 짓고 쓴 어필을 탁본한 것이다. 고종은 조선의 제26대 왕으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다. 외세의 침입이 가시화되는 시기 대한 제국을 선포하는 등 국가의 자주성을 지키려 노력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편찬/간행 경위]

『수릉표』는 고종의 어필로 수릉의 표석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탁본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탁본을 만든 시기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익종을 황제로 추존하고 수릉 표석을 새로 세운 것은 외세의 침입이 가시화되던 때에 대한 제국의 독자성을 보여 주고자 하였던 고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평가된다.

[형태/서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의 서지 정보에 따르면 『수릉표』 奎10012를 기준으로 크기가 가로 23.5㎝, 세로 35.3㎝이다. 표지에는 '수릉 비문(綏陵碑文)'이라 쓰여 있다.

[구성/내용]

『수릉표』 서두에는 전서체로 '대한문조익황제수릉신정익황후부우(大韓文祖翼皇帝綏陵神貞翼皇后祔右)'라 쓰여 있는데, 이는 표석의 전면부를 탁본한 것이다. 이어 후면의 탁본에는 수차례 존호를 올린 사실과 1899년 황제와 황후로 추존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수릉표』익종신정 왕후문조 익황제신정 익황후로 추존한 후 수릉에 세운 표석을 탁본한 것이다. 왕릉이 가지는 중요성과 대한 제국의 독자성 확보를 위한 고종의 노력을 잘 보여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국립 문화재 연구소, 『역사의 숲, 조선 왕릉』(눌와, 2007)
  • 국립 문화재 연구소 문화유산 연구 지식 포털(http://portal.nrich.go.kr)
  • 문화재청 조선 왕릉(http://royaltombs.cha.go.kr)
  •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http://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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