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지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04
한자 明聖王后誌文
영어공식명칭 Myeongseong Wanghu Jimun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684년연표보기 - 『명성왕후지문 저술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90년 - 『명성왕후지문 개찬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송시열|민암
권책 1책
규격 32.5×40.2㎝[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개찬본]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숭릉(崇陵)명성왕후를 합장하면서 1684년에 찬술한 지문.

[개설]

『명성왕후지문(明聖王后誌文)』은 1683년 현종의 비 명성왕후가 사망하자 현종의 능인 숭릉에 합장하면서 찬술한 지문(誌文)이다. 지문은 죽은 사람의 이름, 나고 죽은 날, 행적, 무덤이 있는 곳과 좌향 따위를 적은 글을 말한다. 송시열의 원문은 『숙종실록』에 실려 있으며, 민암이 개찬한 것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저자]

『명성왕후지문』은 1684년 봉조하(奉朝賀) 송시열(宋時烈)에 의해 찬술되었으나, 송시열이 사사(賜死)된 후 1690년에 대제학(大提學) 민암(閔黯)이 왕명을 받아 고쳤다.

[형태/서지]

『명성왕후지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된 개찬본의 경우 1책 4장으로 된 필사본이다. 크기는 가로 32.5, 세로 40.2㎝이다.

[구성/내용]

『숙종실록』에 따르면 송시열이 『명성왕후지문』을 찬술하였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이 소장한 민암의 개찬본의 경우 서두에 '유명조선국현열정헌문덕명성왕후숭릉지(有明朝鮮國顯烈貞獻文德明聖王后崇陵誌)'라는 제목이 있고 그 아래 본문이 있다. 내용을 보면 명성왕후는 일찍이 세자빈이 되어 삼전(三殿)[왕대비전(王大妃殿), 대전(大殿), 중궁전(中宮殿)을 이르는 말]에 효도하고, 육궁(六宮)을 덕화시켰으며 국모가 되어서는 일국이 세자빈의 인덕을 받들었다고 하며 명성왕후의 덕을 찬양하고 있다. 이어서 명성왕후의 역대 조상 및 조부와 부친의 관직과 성명을 밝히고 있으며, 명성왕후가 태어날 때의 기이한 현상이나 어릴 적의 덕과 용모 등을 서술하고 있다. 끝에는 송시열이 쓴 지문을 왕명으로 개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명성왕후지문』명성왕후 출생과 사망, 가계 및 행적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조선 시대 왕비에게 요구되었던 덕목들을 알려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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