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릉 신도비(1805)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038
한자 元陵神道碑(一八零五)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for Wonreung(1805)
이칭/별칭 정순 왕후 능표(貞純 王后 陵表),정순 왕후 원릉비(貞純 王后 元陵碑)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05년연표보기 - 원릉 신도비(1805)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694년 9월 13일 - 조선 영조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45년 11월 10일 - 영조의 비 정순 왕후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776년 3월 5일 - 조선 영조 사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05년 1월 12일 - 영조의 비 정순 왕후 사망
현 소재지 원릉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8-2지도보기
성격 유적/비
양식 방부개석(方趺蓋石)
관련 인물 정순 왕후|영조|순조
재질 화강암[가첨석·농대석]|오석[비신]
크기(높이) 316.3㎝[전체]|62.4㎝[가첨석]|175.8㎝[비신]|78.1㎝[농대석]
크기(폭) 136.5㎝[전체·농대석]|122.8㎝[가첨석]|66.5㎝[비신]
소유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
관리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영조(英祖)영조의 비 정순 왕후의 무덤인 원릉(元陵)의 신도비.

[건립 연혁]

원릉 신도비(1805)는 1805년(순조 5)에 세워졌다. 『순조실록(純祖實錄)』에 따르면 1805년 1월 12일 정순 왕후(貞純 王后)가 사망한 후 산릉도감(山陵都監)이 설치되어 무덤을 조성했는데, 3월 1일 도감의 총호사(摠護使) 서매수(徐邁修)가 표석 등의 설치 방식을 아뢴 기록으로 보아 신도비도 무덤 조성 과정에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구성]

원릉 신도비(1805)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돌]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316.3㎝이며 폭은 136.5㎝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62.4㎝이고 폭은 122.8㎝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지붕 4면의 끝이 윗쪽으로 강하게 솟구쳐 경쾌한 느낌을 준다. 비신의 높이는 175.8㎝이고 폭은 66.5㎝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정순왕후부좌(朝鮮國 貞純王后祔左)'라고 썼고, 정순 왕후의 생몰일·책봉일·수렴청정 기간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陰記)는 해서(楷書)로 썼다. 농대석의 높이는 78.1㎝이고 폭은 136.5㎝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원릉 신도비(1805)는 1682년(숙종 8)에 건립된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 이후 지속적으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 중 하나이다.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정조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원릉 신도비(1805)는 앞 시기에 확립된 양식이 잘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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