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036
한자 崇陵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for Sungreung
이칭/별칭 숭릉 표석(崇陵 表石)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 숭릉 신도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641년 2월 4일 - 조선 현종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642년 5월 17일 - 현종의 비 명성 왕후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74년 8월 18일 - 조선 현종 사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83년 12월 5일 - 현종의 비 명성 왕후 사망
현 소재지 숭릉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11-2지도보기
성격 유적/비
양식 방부개석(方趺蓋石)
관련 인물 현종|명성 왕후|경종
재질 화강암[가첨석·농대석]|오석[비신]
크기(높이) 291.9㎝[전체]|49.3㎝[가첨석]|159.6㎝[비신]|83.0㎝[농대석]
크기(폭) 186.0㎝[전체·농대석]|128.0㎝[가첨석]|70.6㎝[비신]
소유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
관리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현종현종의 비 명성 왕후의 무덤인 숭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숭릉 신도비(崇陵神道碑)는 1721년(경종 1)에 세워졌다. 『경종실록(景宗實錄)』에 따르면 1720년(경종 즉위) 8월 28일 각 능에 표석을 세우자는 영의정 김창집(金昌集)과 우의정 이건명(李健命)의 건의를 경종이 받아들였고, 다음 해인 1721년 1월 24일 신도비를 세우는 작업을 감독하도록 했다.

[형태·구성]

숭릉 신도비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대]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291.9㎝이며 폭은 186.0㎝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49.3㎝이고 폭은 128.0㎝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서까래와 같은 상세한 표현은 생략되었다. 지붕 용마루의 내림마루[용마루에서 추녀마루를 잇는 부분]가 두껍게 처리되었고 처마선은 수평에 가깝다. 비신의 높이는 159.6㎝이고 폭은 70.6㎝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현종대왕숭릉명성왕후부좌(朝鮮國 顯宗大王崇陵明聖王后祔左)'라고 썼고 현종명성왕후의 생몰일·책봉일·장례일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陰記)는 해서(楷書)로 썼는데, 앞면과 뒷면의 글을 짓고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은 알 수 없다. 농대석은 1단인데 높이는 83.0㎝이고 폭은 186.0㎝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숭릉 신도비는 1682년(숙종 8)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이 건립된 이후에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이다. 영릉의 표석 이후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英祖)·정조(正祖)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숭릉 신도비는 능표의 양식이 간략화되는 초기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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