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030
한자 九里太祖健元陵神道碑
이칭/별칭 건원릉비(健元陵碑),건원릉 비석(健元陵 碑石)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09년 윤4월 13일연표보기 -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691년 7월 -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 비각 중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335년 10월 11일 - 조선 태조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08년 5월 24일 - 조선 태조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7월 16일연표보기 -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 보물 제1803호로 지정
현 소재지 건원릉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1지도보기
성격 유적/비
양식 귀부이수
관련 인물 태조|태종|숙종|권근|변계량|성석린|정구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448.6㎝[전체]|108.6㎝[이수]|227.0㎝[비신]|70.3㎝[귀부]|42.7㎝[대좌]
크기(폭) 231.9㎝[전체·대좌]|120.4㎝[이수·비신]
소유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
관리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803호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 세워진 신도비.

[건립 연혁]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九里太祖健元陵神道碑)는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따르면 1409년(태종 9) 윤4월 13일에 세워졌다. 『문종실록(文宗實錄)』에 따르면 1452년(문종 2) 3월 3일 풍수가 문맹검(文孟儉)이 신도비 비각(碑閣)의 배수로가 얕으므로 좀 더 깊게 팔 것을 건의한 적이 있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1691년(숙종 17) 7월 24일 건원릉 비각을 헌릉(獻陵)[태종과 태종의 비 원경 왕후(元敬王后)의 무덤]의 비각 제도에 맞춰 중건하게 했다. 이때 신도비의 귀부도 다시 만들어졌다. 이는 1690년 10월 27일 신도비의 글씨가 흐려졌으므로 비각을 다시 세워 보호하라는 왕명에 의한 것이었다. 신도비 건립 당시 비문과 음기(陰記)는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이 지었고, 글씨는 성석린(成石璘)이 썼으며, 제액(題額)은 정구(鄭矩)가 썼다.

[형태·구성]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화강암 재질의 이수(螭首)·비신(碑身)·귀부(龜趺)·대좌(臺座)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448.6㎝이며 폭은 231.9㎝이다. 이수와 귀부는 7세기 중국의 당나라에서 수용한 양식으로, 신라의 태종 무열왕릉비(太宗 武烈王陵碑)에서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수의 높이는 108.6㎝이고 폭은 120.4㎝이며, 가운데에 전서(篆書)로 '태조건원릉비(太祖健元陵碑)'라고 새긴 제액이 있고 그 주변을 감싸는 형태로 네 마리의 용을 조각했다. 비신의 높이는 227.0㎝이고 폭은 120.4㎝이며, 현재 표면에 일부 금이 가거나 마모된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양호하다. 귀부의 높이는 70.3㎝이며 거북 머리는 다른 왕릉 신도비의 거북 머리가 사나운 인상인 것과 달리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등에는 귀갑문(龜甲文)을 좌우 대칭으로 새겼고, 거북의 몸 아래에는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을 조각했다. 대좌의 높이는 42.7㎝이고 폭은 231.9㎝이며, 2단으로 구성되었다. 하단에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을 새겨 귀부의 앙련과 조화를 꾀했다.

[관련 사건·일화]

『현종실록(顯宗實錄)』에 따르면 1662년(현종 3) 9월 9일 현종건원릉을 방문해 의례를 실시한 후 건원릉 신도비(1409)의 비문과 뒷면에 새겨진 공신들의 명단을 살폈다.

[가치 및 의미]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조선의 왕릉에 세워진 최초의 신도비로, 이후에 제작된 신도비들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전체 형태와 각 부위의 양식 및 새겨진 글씨들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므로 관련 분야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