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2018
한자 綏陵
영어공식명칭 Suereung
이칭/별칭 익종 수릉,문조 수릉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7-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830년연표보기 - 수릉 내 익종의 능[연경묘] 조성
조성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수릉 내 신정 왕후의 능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809년 - 익종[효명 세자] 출생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808년 - 신정 왕후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30년 - 익종[효명 세자] 사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90년 - 신정 왕후 사망
이장 시기/일시 1846년 - 수릉 양주 용마봉 아래로 천릉
이장 시기/일시 1855년 - 수릉 현재 위치로 천릉
문화재 지정 일시 1970년 5월연표보기 - 수릉 사적 제193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6월 - 수릉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현 소재지 동구릉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7-2지도보기
성격 유적/능묘
양식 합장릉
관련 인물 익종|신정 왕후
관리자 문화재청 조선 왕릉 동부 지구 관리소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의 추존왕 익종·신정 왕후의 능.

[개설]

수릉(綏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조선의 추존왕 익종(翼宗)[1809~1830]과 비(妃) 신정 왕후(神貞王后)[1808~1890]의 능이다. 익종은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아들이며, 제24대 왕 헌종의 아버지다. 어머니는 김조순(金祖淳)의 딸 순원 왕후(純元王后) 김씨이다. 1819년(순조 19)에 신정 왕후와 가례를 올렸다. 익종은 1812년(순조 12)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27년부터는 부왕 순조를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대리청정한 지 4년째인 1830년 세상을 떠났다. 사후 효명(孝明)이라는 시호를 받았기 때문에 효명 세자라고도 불린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으로 추존되었다. 1899년 대한 제국 선포 후 당시 고종(高宗)의 직계 5대 조상으로, 문조 익황제(文祖翼皇帝)에 추존되었다.

신정 왕후는 1819년(순조 19)에 익종과 혼인하여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827년에 헌종을 낳았다.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신정 왕후는 왕대비가 되었고, 1863년 헌종의 뒤를 이었던 철종(哲宗)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의 권한으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고종]을 즉위하게 하여, 고종 즉위 초기 수렴청정을 하기도 하였다. 1890년(고종 27)에 경복궁 흥복전에서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정 왕후 또한 1899년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으로서 신정 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되었다.

[위치]

수릉은 두 번의 천릉을 거쳐 현재 위치인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의 동남부에 자리 잡았다.

[변천]

수릉은 본래 연경묘(延慶墓)라는 이름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경종(景宗)의 의릉(懿陵) 왼편에 조성되었다. 1830년 익종이 세상을 떠날 당시 세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무덤에 '능'이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고 '묘'라 하였던 것이다. 이후 아들 헌종이 즉위하면서 익종이 왕으로 추존되자 연경묘 또한 왕릉으로 승격되어 수릉이라 하였다. 1846년(헌종 12) 수릉이 위치한 곳이 풍수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양주 용마봉[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용마산]으로 옮겼다가, 1855년(철종 6)에 다시 풍수 문제가 제기되어 동구릉 경내의 현재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1890년(고종 27)에 신정 왕후가 사망하자 수릉에 합장릉(合葬陵)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다.

[형태]

수릉은 하나의 봉분에 국왕과 왕비를 함께 매장한 합장릉의 형태이다. 조선의 왕릉 제도에서는 합장할 때에 왕후를 왼쪽에 두고 국왕을 오른쪽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수릉익종의 관을 왼쪽에 두고 신정 왕후를 오른쪽에 둔 것이 특징이다.

능침 공간은 크게 상계와 하계, 두 구역으로 나뉜다. 이는 조선 후기 조성된 왕릉의 특징이다. 상계에는 봉분이 위치한다. 봉분의 좌우와 뒷면 세 방향에는 곡장(曲墻)[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와 좌우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을 둘렀고, 봉분에는 병풍석(屛風石)[능, 묘의 봉분 둘레에 병풍같이 둘러막아 쌓은 돌]이 없고 난간석(欄干石)[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기둥 모양의 돌]만 조성하였다. 봉분 주변에는 석양·석호가 각 두 쌍씩 배치되었으며, 봉분 앞에 혼유석(魂遊石)[영혼이 나와서 놀게 하기 위하여 무덤의 앞에 설치해 놓는 직사각형의 돌]이 있고 양쪽에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한 쌍 놓여 있다. 하계에는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이나 절 안에 세워 두는 석등]·무석인·문석인·석마 등의 석물이 조성되어 있다. 능침 공간 아래 제향 공간에는 정자각이 세워져 있다.

[금석문]

수릉의 비각은 정자각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비각 내에는 두 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다. 하나는 1890년에 익종신정 왕후를 합봉한 뒤 세운 합봉비로, 전면에 전서체로 '조선국익종대왕수릉신정왕후부우(朝鮮國翼宗大王綏陵神貞王后祔右)'라 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의 표석은 익종신정 왕후가 황제와 황후로 추존된 후 만들어진 것이다. 전면에 전서체로 '대한문조익황제수릉신정익황후부우(大韓文祖翼皇帝綏陵神貞翼皇后祔右)'라 새겨져 있다.

[현황]

수릉이 속한 구리 동구릉 전체가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9년 6월에는 조선 왕릉 전체가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릉문화재청 조선 왕릉 관리소 동부 지구 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수릉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 중 하나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조선 왕실의 문화와 왕릉 연구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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