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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2039
영어공식명칭 Seollal
이칭/별칭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신일(愼日),달도(怛忉),구정(舊正),설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일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지내는 명절.

[개설]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은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이다. 설이 언제부터 유래된 명절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중국의 역사서에 신라인들의 원일(元日)[설날의 다른 이름]에 관한 기록이 있고, 『고려사(高麗史)』에 9대 속절(俗節)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4대 명절의 하나로 여기는 등 오래전부터 널리 기념해 온 것은 분명하다. 설날에는 아침에 차례(茶禮)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풍습이 있다. 또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아이들에게는 세장(歲粧)이라고 하는 새 옷을 입히고, 사람들에게는 세찬(歲饌)이라고 하여 시절 음식인 떡국을 대접한다.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즐기고, 복을 담는다는 의미를 지닌 복조리를 벽이나 문 위에 걸어 둔다. 이러한 설날의 풍속은 경기도 구리시의 아천동 우미내 마을, 갈매동 도촌말, 사노동 안말, 인창동 동창말, 수택동 수늪 마을 등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행해지는데, 우리나라 전역의 설날 풍속은 비슷하다.

[연원 및 변천]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도 설날[元正]은 상원(上元)·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와 함께 9대 속절(俗節)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여겼다.

[절차]

설날에는 직계 가족들이 모여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린 후 친적 및 이웃의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다닌다. 집안에 따라서는 성묘를 가는 경우도 있으며, 윷놀이와 널뛰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즐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설날은 섣달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 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는데,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만약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다. 또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복을 부른다는 복조리 풍속도 속신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세화(歲畵)라 하여 액을 쫓는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렸고, 도끼를 든 장군상을 그려 대궐문 양쪽에 붙였으며, 민간에서는 '용(龍)' 자와 '호(虎)' 자를 한지에 써서 대문에 붙였다. 정초에 널을 뛰면 그해에 발에 무좀이 슬지 않는다고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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