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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2035
영어공식명칭 Tteokguk
이칭/별칭 백탕(白湯),병탕(餠湯),첨세병(添歲餠)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명절 음식
의례 시기/일시 설날[음력 1월 1일]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서 설날에 먹는 음식으로, 흰 가래떡을 어슷하게 썬 후 고기 육수에 넣어 탕국으로 만든 음식.

[개설]

떡국은 멥쌀을 쪄서 원통형으로 길쭉하게 만든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 꿩이나 닭 등을 삶은 고기 육수에 넣고 끓인 탕국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떡국을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 적고 있는데,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 한 것이다. 떡국은 보통 설날 아침 차례 때 제사상에 올린 후 메[밥] 대신 먹는 시절 음식이어서 떡국 먹는 것을 나이를 먹는 것으로 빗대어 이야기하곤 했다. 즉, 예전에는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라고 물었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한다.

떡국을 끓이는 방법과 재료는 지역과 집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경기도 구리 지역도 예전에는 꿩고기나 닭고기를 삶은 육수에 떡을 넣어 끓인 후 고기와 계란 지단, 그리고 김 가루 등을 고명으로 올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쇠고기를 삶아 육수를 만들고, 고명으로도 쇠고기를 올린다. 또 가정에 따라 떡과 함께 만두를 넣은 떡만둣국을 끓이기도 한다. 아천동 우미내 마을인창동 동창말, 그리고 수택동 수늪 마을 등은 설날에 대부분 떡국 차례를 지낸다. 참고로, 사노동 안말에서는 정월 차례 때 떡국을 올릴 경우 다른 떡은 장만하지 않는 사례도 조사되었다.

[연원 및 변천]

떡국의 유래와 관련된 오래된 문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때를 알지는 못한다. 다만 한말 일제 강점기 사학자이자 시조 시인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1890~1957]은 『조선 상식 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이 매우 오래되었고, 상고 시대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飮福)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떡국은 정조 차례(正朝茶禮)[새해 차례]와 세찬(歲饌)[설에 세배하러 온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에 없으면 안 될 음식이라 여겨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에게도 대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떡국은 조선 시대 궁중 잔치 기록에도 한 차례 등장한다. 익종(翼宗)[1809~1830]의 비(妃)인 조 대비의 환갑을 축하하는 진찬[1868년 11월] 때인데, 잔칫상에 올린 것은 아니고 악공(樂工)과 여령(女伶)들의 밤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때가 설이 아닌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떡국은 평소에도 단체 급식용으로 이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 궁중에서는 한여름에 복날의 별식으로 떡국을 먹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정월 초하루에 떡국을 먹는 이유가 문헌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가래떡을 사용하고 떡국 먹는 것을 나이 먹는 것으로 말해 온 것을 보면, '장수(長壽)'와 '건강'을 기원하며 새해 첫 음식으로 삼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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