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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2034
한자 冬至-粥
영어공식명칭 Dongji Adzuki-bean Gruel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절식
의례 시기/일시 동지[매년 12월 22일이나 23일경]

[정의]

경기도 구리 지역에서 동짓날에 먹는 붉은팥으로 만든 절식.

[개설]

동지(冬至)는 24절기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인데, 음(陰)이 극에 달해 귀신이 성하는 날로 여긴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주술적인 의미로 양(陽)의 기운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으로 음의 기운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다. 즉, 동지는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붉은색의 팥죽을 쑤게 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경기도 구리시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있다. 아천동 우미내 마을에서는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었다. 예전에는 집안 가신을 모신 곳곳에 팥죽을 떠 놓았다가 숟가락으로 기둥마다 뿌려 액을 예방하고 이웃에 돌려 나누어 먹었는데, 요즘에도 하는 집이 간혹 있다. 갈매동 도촌에서도 동지에 팥죽을 먹었는데, 동짓달 초순에 드는 애동지에는 먹지 않고, 중순에 드는 중동지와 하순에 드는 노동지에 먹었다. 또 이사를 가거나 새 집을 지었을 때 팥죽을 쑤어 방마다 한 그릇씩 떠 놓았다가 벽이나 기둥에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뿌리기도 했다. 사노동 안골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끓여 이웃과 나누어 먹었으며, 인창동 동창골에서도 동지팥죽을 쑤어 성주·터주·부엌·우물가·대문 등에 고루 놓고 먹었다.

[연원 및 변천]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는 풍속은 중국의 풍습에서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공공씨라는 사람이 재주 없는 아들을 두었는데 동짓날에 그 아들이 죽어 역귀가 되었다. 아들이 생전에 팥을 몹시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쫓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지나 전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말 학자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에도 팥죽의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팥죽을 먹어 왔음은 분명하다. 조선 시대의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는 기록이 보이며, 『군학회등(群學會騰)』·『규합총서(閨閤叢書)』·『부인필지(婦人必知)』 등의 문헌에는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예전에는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장독대에 뿌리면 귀신을 쫓고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 이사하거나 새 집을 지었을 때에도 팥죽을 쑤어 집 안팎에 뿌리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 병이 나면 팥죽을 쑤어 길에 뿌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병마를 쫓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상을 당하였을 때 친지나 이웃에서 팥죽이나 녹두죽을 쑤어 보내는 풍습이 있었으며, 삼복더위에 복죽(伏粥)이라고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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