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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2010
영어공식명칭 jaekichag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노는 시기 매년 12~2월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서 제기를 발로 차며 노는 놀이.

[개설]

제기차기는 엽전이나 쇠붙이에 얇고 질긴 종이나 천을 접어서 만든 제기를 발로 차며 노는 놀이로 주로 겨울철에 즐겨 하였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주로 하였는데, 단순히 발로 차는 방법부터 손과 발 등을 이용하여 즐기는 방법 등 다양하다. 구리시 갈매동에서는 정초에 제기차기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연원]

제기차기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축국(蹴鞠)의 발달 과정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이유는 축국의 방식이 제기차기와 비슷하기 때문인데, 주로 왕실에서 즐겨하던 것이 이후에 민간에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을 차는 축국이 조선 초기에 '뎌기'라고 했다가 18세기 이후 '져기'” 또는 '적이'를 거쳐 '제기'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공을 제기로 사용하다가 공 이외에 새로이 건(毽), 건자(鞬子), 척건자 같은 제기가 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제기차기가 아이들의 놀이로 발전한 사실은 19세기에 편찬된 『아희원람(兒戱原覽)』에서 축국, 곧 제기를 아이들의 놀이로 소개한 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렇듯 제기차기는 조선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조선 시대의 인물인 이항복(李恒福)이 어린 시절에 씨름과 축국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제기차기는 석전(石戰)과 함께 구한말 서양의 선교사들이 가장 신기해 한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가 서양의 근대식 축구가 도입되면서 공을 이용한 제기차기 형식의 축국은 점차 사라졌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제기차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기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제기는 엽전이나 천 등을 이용하여 만든 것도 있으며, 야외에서 구할 수 있는 풀을 제기 대신 차기도 하였다. 구리시에서는 질그릇으로 쓰는 사금파리에 모시나 명주와 같이 얇은 헝겊을 묶어서 만들었다. 또한 창호지를 동그랗게 똬리 모양으로 까서 엽전 모양으로 만들어 제기로 이용하였다. 미농지(美濃紙)를 사용할 때도 있었고, 헝겊에 흙이나 마른 말똥을 싸서 잡아매고 꿩의 꽁지깃을 꽂아 만들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비닐로 깃을 만든 제기가 널리 사용된다. 구리시에서도 제기차기를 주로 야외에서 하였다. 마당이나 마을의 골목길이, 공터, 학교 운동장이 제기차기를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놀이 방법]

제기차기는 개인끼리 놀거나 편을 갈라 노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편을 나눠 놀이를 할 경우에는 편을 가르고 나면 어떻게 찰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그 결정에 따라 놀이를 진행한다. 다양한 방법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기를 차 종합하여 승부를 가르기도 한다. 제기를 차는 방법에 따라 노는 방식 또한 다양한데, 한 발 차기·양발 차기·외발 차기·뒷발차기·돌려 차기 등이 있다. 승부가 아닌 심심풀이로 제기차기를 할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두 사람 이상이 둥글게 서서 발로 제기를 차면서 주고 받는다. 이를 구리시에서는 동네 제기라고 부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제기차기는 인원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놀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의 근력과 지구력 향상 등의 신체 단련과 인내력을 기르는 데 유용하다. 구리시의 아이들은 겨울철이면 골목이나 넓은 공터에 모여 제기차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현황]

예전과 달리 손쉽게 제기를 구할 수 있지만 예전처럼 제기차기를 즐기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다. 다양한 놀이 도구와 컴퓨터 게임 등이 생겨나면서 아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구리시에서 제기차기 전승이 단절된 것은 아니다. 학교 등에서 제기차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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