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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80004
한자 寒食
영어공식명칭 Hansik
이칭/별칭 숙식,냉절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명절
의례 시기/일시 4월 5일 무렵[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서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행해지는 명절.

[개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한식 절사(寒食節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울 풍속에 산소에 참예(參詣)하여 제사를 올리는 것은 설날·한식·단오·추석의 네 명절이다.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을 올린다. 이것을 '절사(節祀)'라고 한다. 집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하다. 이때 도시 주변의 교외는 성묘하는 남녀가 줄을 이루어 끊이지 않는다." 당나라 정정칙(鄭正則)은 『사향의(祠享儀)』에 옛날에는 묘제(墓祭)에 관한 글은 없는데, 공자가 묘를 바라보며 제사를 지낼 것을 허락했으므로 시절에 따라 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당나라 개원(開元)[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연호] 때에는 한식날에 성묘하는 것을 칙허(勅許)하였다. 중국 오대(五代) 때 후주(後周)에서는 한식의 야제(野祭)에 지전(紙錢)을 태웠다. 지금의 설날·단오·추석에다 한식을 더하여 4대 명절로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속이다. 대궐에서는 여기에 동지를 더하여 5대 절향(節享)으로 한다. 구리시에는 망우 공원 묘지가 있어 한식 때 많은 성묘객들이 찾는다.

[연원 및 변천]

한식날 묘제는 당나라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춘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사람들은 한식날을 냉절(冷節)·숙식(熟食)이라고도 하였다. 춘추 전국 시대 진나라 사람 개자추(介子推)의 소사(燒死)를 불쌍히 여겨 불[火]을 금한 유속(遺俗)이라는 말도 있으나 개자추의 이야기는 후대에 성립된 것이며 야설로 볼 수 있다. 『주례(周禮)』에는 봄에 불을 낸다고 하였다. 1년에 한 번 불을 만들어 대궐에서부터 민간에 새불[불씨]을 나누어 주고 묵은해에 사용해 오던 불은 못 쓰게 하였으므로, 한식날은 불이 없어서 지어 두었던 식은 밥을 그대로 먹었다. 그래서 한식(寒食)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식에 불을 나누어 주던 풍속은 주나라 이후 청나라까지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말까지 청명 혹은 한식에 내병조(內兵曹)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취하여 대궐에 바쳤으며, 이 불을 대궐 안에 있는 각 관아와 정승들 집에 나누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한식날 묘제를 지내는 풍속은 문헌상 고려 초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신라 때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한식날 관원에게 묘제를 허락하고 죄수에게 형(刑)을 금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성묘가 일반화되었다. 도시화된 오늘날에는 한식의 풍속을 지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절차]

한식에는 성묘, 산소 수리, 묘제 등을 지낸다. 특히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를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묘 둘레에 나무도 심는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경기도 구리시에서도 한식에 차례를 지내는 집이 있으나 일반적이지는 않다. 구리시 전 지역이 오늘날 도시화되면서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만 전승되고 있다. 한식날 산소에 가는 사람들은 산소를 둘러보고 벌초를 하며 잔디가 죽었으면 새 잔디를 입히기도 한다. 또한 주·과·포·떡·탕·적 등을 올리고 묘제를 지내기도 한다.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 사는 제보자는 한식이 되면 산소를 찾아가서 술과 과일을 올리고 간단히 절만 하고 온다. 예전부터 집안에서 해 오던 풍속이지만 요즘에는 한식에 산소를 가는 친척들이 없어 자신이 혼자 산소에 다녀온다고 한다. 한편, 한식 때 성묘를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으나 망우리 공원 묘지에는 여전히 많은 성묘객들이 찾는다. 주로 가족 단위로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다 보니 인근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교통 혼잡이 심해지는 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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